◇현대인의 탄생/전우용 지음/344쪽·1만5000원·이순
‘현대인의 탄생’은 1945년 광복을 맞는 순간부터 1953년 6·25전쟁이 끝나는 시기까지 대한민국의 의료사(史)를 살펴본다. 전대미문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한국인의 몸과 삶, 질병과 위생에 대한 관념 등이 어떻게 달라졌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온 의료기관이 어떻게 토대를 닦았는지가 이 책이 알려주고자 하는 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자유가 찾아왔지만 이는 당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한국인에겐 재앙이기도 했다. 먼저 인구 이동의 파도가 한반도를 덮쳤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에 끌려 나갔던 이들,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에서 도망친 이들을 합쳐 총 300만 명 가까이가 한국(남한) 땅을 밟았다. 저자는 “폭증한 도시 인구, 유랑하는 군중은 각종 전염병을 발발시키고 널리 퍼뜨렸지만, 당시 정부로서는 위생이나 보건 문제 등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6·25전쟁에는 핵무기를 제외한 당대 최신 살상무기가 총동원됐다. 미군만 따져도 전쟁 중 폭탄 46만 t, 네이팜탄 3만2357t, 로켓탄 31만3600발, 기관총 1억6685만3100발 등을 한반도에 쏟아 부었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 전역이 갈기갈기 찢겼고, 그 안에 사는 생명체가 무수히 살상됐다. 저자는 “이 시기 한국인의 몸은 온갖 질병과 세균, 총탄과 포탄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거대한 고통과 두려움을 말 그대로 ‘체험’했다”고 설명한다.
미군정기 보건후생부 위생시설국에서 제작한 포스터. 이때부터 ‘단속과 지시’ 대신 ‘권유와 계몽’이 보건 행정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순 제공
실제로 이 시기 회충 감염률은 평균 50% 이상, 지역에 따라서는 90%에 육박했고, 십이지장충 감염률도 30% 내외였다. ‘왜 어릴 적 학교에서 1년에 한두 번씩 구역질나는 회충약을 먹어야 했는지’ ‘기생충 감염이 1% 미만에 불과한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종합구충제를 먹는 가정이 많은지’ 등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왜 광복 이후 지식인의 결핵 발병률이 유난히 높았는지’ ‘왜 간염이 수십 년 동안 한국인을 괴롭혔는지’ ‘한국인이 약을 맹신하게 된 이유는 뭔지’ ‘현재 서울 강남과 압구정동 일대를 장악한 성형외과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렸는지’ 등도 책은 명쾌하게 설명한다.
60여 년 전 한국인의 위생 관념은 무지에 가까웠다. 상당수 한국인이 성병과 결핵을 앓았고 마약에 빠져 있었다. 질병은 범죄와 다름없이 취급됐다. 아픈 사람은 범죄자처럼 적발, 차단, 격리, 제거됐다. 병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시골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주로 의원이 아니라 무당을 찾았다.
1952년 경기 문산 피란민수용소에서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들. 이순 제공
저자는 “현대인은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며 “그런 점에서 광복 이후 한국전쟁기까지 보건의료사는 현대 한국인의 탄생사라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인의 탄생’이라는 제목도 이런 의미로 붙였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에 비해 제목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어서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해 보이는 점은 아쉬움을 준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