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실패 이전에 정책실패” 저축銀 10년전부터 잘못갔다
○신뢰도 과장
① ‘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 개명 ② 예금보호한도 5000만원으로 상향 ③ 소액대출 독려
“자산이 시중은행 지점 몇 개를 합친 수준에 불과한 상호신용금고에 ‘은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부터 잘못입니다.” A은행 부행장은 2002년 3월 상호신용금고라는 명칭을 저축은행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준 것을 저축은행 정책의 주요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시중은행에 비해 몸집이 한참 작은 것은 물론이고 실력도 떨어지는 금융기관에 과분한 명칭을 부여하면서 예금자에게 지나친 신뢰감을 심어줬다는 지적이다. 부산상호신용금고도 이때 지금의 부산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약 10년에 걸친 사상 최대의 금융범죄를 저질렀다.
명칭 변경이 이뤄진 지 5년 뒤인 2007년에는 저축은행의 최고경영자 직함을 기존의 대표이사나 사장 대신 ‘저축은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해줬다. 당시에도 시중은행들은 “저축은행이 은행장이란 명칭을 사용하면 소비자들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안정성이 1금융권인 시중은행만큼 높다고 오인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광고 로드중
○덩치 키우기
④ ‘8·8 클럽’ 대출규제 완화 ⑤ 고위험 PF영업 길열어 ⑥ 인수합병에 인센티브
2006년 8월 도입했다가 최근 폐지된 ‘8·8클럽’ 제도도 저축은행 부실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다. 8·8클럽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이면서 3개월 이상 이자가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비율이 8% 이하인 우량 저축은행에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준 정책이다. 우량 저축은행에 자율권을 준 결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몸집만 키우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 고수익 고위험의 부동산 PF 대출 영업은 저축은행의 대출을 대폭 늘리는 촉매제가 됐다. 8·8클럽 도입 등 대출 규제가 풀리고 2007년 6월 저축은행 업계의 ‘PF 대출 취급규정’이 만들어지면서 부산저축은행처럼 PF에 ‘다걸기(올인)’하는 저축은행들이 나타난 것이다. 금융당국은 PF 대출이 전체 대출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했으나 일부 저축은행은 PF 대출을 일반 대출로 가장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갔다.
2008년 9월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합병(M&A)한 저축은행에 기존 영업지역 외에 다른 곳에 지점을 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준 정책도 저축은행 부실을 키우는 역효과를 냈다. 이 정책으로 부산저축은행은 같은 해 11월 대전저축은행과 전주저축은행을 인수해 충청과 전북으로 영업권을 넓힐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부실이 전염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금융당국이 내놓은 6대 저축은행 정책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소액대출 확대와 부실→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PF 대출 늘리기 경쟁→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를 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PF 부실의 직격탄을 맞았다.
광고 로드중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