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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창원]1973년 오일쇼크와 동일본 대지진

입력 | 2011-05-23 03:00:00


김창원 도쿄 특파원

며칠 전 일본인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자연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방담으로 이어졌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원전 사고 수습에 우왕좌왕하는 일본 원전 당국에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그들은 “원전 때문에 일본의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졌다”며 분개했고 “일본의 위기관리는 꼬마 수준”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어떤 이는 “정부 고위직 인사들은 일찌감치 가족을 해외로 빼돌렸고 부자동네는 모두 해외로 나가버려 집이 텅 비었다”는 인터넷 루머를 전하며 “취재해 보라”는 귀띔도 해줬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이들의 우려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원전 사고까지 터져 일본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나라 걱정으로 귀결됐다. 태연하고 침착해 보이는 일본인들도 원전 사고의 파장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일본 사회의 집단적 위기감과 불안은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때도 대단했다. 중동 이슬람 산유국의 석유 금수조치로 기름값이 하루아침에 배럴당 2달러에서 10달러로 뛰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L당 2000원 하는 휘발유값이 1만 원으로 뛴 셈이다. 당시 석유의존도가 80%에 육박하던 일본은 패닉에 빠졌다.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화장지와 세제 등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났고 ‘광란 물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고도성장 중이던 일본은 이듬해인 1974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오일쇼크를 드라마틱하게 반전시켰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중후장대 산업을 자동차, 전기전자 같은 경박단소 산업으로 재편해 제조업의 체질을 바꿨다. 소니가 VTR와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수준의 에너지 절약기술도 오히려 오일쇼크가 약이 됐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kWh/달러·2007년 기준)은 0.39로 한국(0.78)의 절반에 불과하다. 공장에서의 노동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동자의 동선 연구와 불량률을 낮추기 위한 철저한 품질관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외형보다 실질을 추구하는 세계적 생활용품 브랜드인 무지(MUJI)도 에너지를 아끼려는 일본인의 검소한 소비생활 속에서 탄생했다. ‘다시는 궁핍했던 전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국민적 위기감이 혁신과 브랜드를 낳았다.

오일쇼크 이후 찾아온 전후 최대의 위기를 일본은 또 한번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을까. 원전 사고 후 일본의 모습은 아직 어수선하다. 20년 장기불황 끝에 찾아온 원전 사고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패배감도 작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원전 사고와 사상 초유의 전력 부족 사태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소비전력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전력 낭비를 없애는 ‘스마트그리드’의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전력산업에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그리드 기술은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들여 연구하는 차세대 송전(送電)기술이다. 또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기구 보급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산업의 틀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또 다른 성공 신화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역사적 진보는 부족하고 궁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오일쇼크 당시 일본의 경험은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선 일본의 응전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