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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산 사람들을 강하게 만든 피의 꽃밭이여…

입력 | 2011-05-14 03:00:00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 교황의 방한은 생방송으로 중계될 정도로 장안의 큰 관심사였다. 교황은 김포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허리를 굽혀 땅에 입을 맞췄다. ‘순교자의 땅’이란 말을 연방 되풀이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 한국인에게 건넨 첫인사였다. 그리고 교황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울 마포의 절두산 순교성지였다.

절두산(切頭山), 사람의 머리를 벤 산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지명 중 이토록 애달픈 이름이 또 있을까.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함대의 침범으로 일어난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이후 절두산이 있는 양화나루 일대를 처형 장소로 사용했다. 많은 교인이 이곳에서 참수형으로 죽어갔다. 그 수에 대해서는 수백∼수천 등 많은 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순교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해진 믿음은 이곳을 우리나라 천주교의 상징이자 성지로 만들었다. 마침내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려 성당과 박물관이 1966년 3월에 착공됐고 1967년 10월 완공됐다.

절두산은 원래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 잠두봉(蠶頭峰)이라고 불렸다. 예로부터 뛰어난 경치 덕분에 많은 문인과 명사가 즐겨 찾던 명승지였다고 전해 온다. 지금도 단조로운 ‘아파트 병풍’ 사이에 턱 하고 튀어 나온 절벽의 풍광이 과거의 운치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사형장은 잠두봉을 포함한 양화진 나루터에 있었다. 프랑스 함대가 천주교인들 때문에 양화진 근처까지 접근했으니, 교인들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끌려나온 교인의 목에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면 강 아래로 잘린 머리가 떨어지며 언덕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고 한다.

이후 한국 천주교에서는 순교한 영혼을 상징하는 의미로 교인들이 감옥에서 썼던 칼(두껍고 긴 널빤지 끝에 구멍을 뚫어 죄인의 목에 끼우던 형틀) 모양을 사용해 왔다. 절두산 건물 중심에 있는 탑 역시 칼을 세워 놓은 모습이다. 지금 그 구멍에는 사람의 목 대신 커다란 종이 걸려 있다. 형틀이 죽음이 아닌 종소리로 세상을 울리고 있으니 역사란 참으로 아이러니할 뿐이다. 아쉽게도 무척 맑은 소리를 가졌다는 종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다. 종이 너무 낡아 오래전 휴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성모상 근처에서 봉헌양초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묵도를 드렸다. 성당까지 가파른 언덕을 올라 근처 계단에 앉아 풍경을 담았다. 오후 3시, 나지막한 성가 소리와 함께 미사가 시작됐다. 혹시 종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하는 상상에 잠깐 펜을 놓고 가만히 탑과 그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뚫린 강변북로의 차 소리만 방음벽 너머 고요의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그래, 가장 중요한 건 마음속에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추억 속 성당의 종소리를 더듬어 봤다. 과거의 아픔은 잊혀진 듯 신부님의 신앙고백 소리만 문 사이로 부드럽게 새나오던 평화로운 오후였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