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그 치명적 유혹/피터 H 글렉 지음·환경운동연합 옮김/280쪽·1만3800원·추수밭
신간 ‘생수, 그 치명적 유혹’에서 저자가 직접 목격한 별난 풍경들이다. 책은 워터 소믈리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지구촌이 생수 열풍에 빠졌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매일같이 1초마다 1000개가 넘는 생수 병이 버려진다. 미국인이 생수 1병을 마시는 동안 세계적으로는 4병이 소비된다.
운동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켰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말 그대로 추억이 됐음을 떠올려볼 때 한국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어떤 지방자치단체에선 수돗물을 플라스틱 병에 담아 샘물 상품처럼 내놓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강한 듯하다.
왜 사람들은 수돗물을 못 믿을까. 저자는 이 같은 불신을 생수회사가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2001년 미국 코카콜라의 홈페이지엔 식당들이 손님에게 식수로 수돗물을 제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공식 사업 기획서가 올라왔다. 이 기획서에는 이윤이 없는 수돗물이 제공되는 것을 막고 돈이 되는 다른 음료로 전환하는 연구가 수행 중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수돗물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대기업의 속내가 들통 난 셈이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 생수를 판매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다이아몬드 생수’를 판매하고 있다. 즉각 ‘소름 끼친다’는 사람들의 반발이 쏟아졌고 코카콜라는 사이트에서 해당 글을 삭제했다.
정말 수돗물이 식수로는 부적합할까. 저자의 대답은 노(no)다. 수돗물은 정밀여과, 한외여과(고압으로 여과막을 통과시키는 여과법·모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걸러진다), 나노여과, 역삼투여과를 거치며 염소, 오존, 자외선 등으로 소독한다. 철저히 관리만 된다면 가장 안전한 물인 셈이다. 수돗물에 관한 정부의 규제도 깐깐하고 복잡하다. 2006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선 수돗물과 파는 생수 피지워터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우리의 상식을 깼다. 피지워터와 수돗물은 모두 미 연방 정부 수질 기준을 충족했지만 피지워터에서 휘발성 플라스틱 성분, 수돗물보다 40배 많은 박테리아, 수돗물에 없는 비소 성분이 검출됐다. 피지워터는 프리미엄 생수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모든 생수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수돗물과 비교했을 때 파는 생수의 관리 규정이 느슨하기 때문에 생수가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수돗물은 대장균이 발견되면 검출 당일 공개적으로 경보를 발령하는 등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생수는 대장균이 발견돼도 소비자에게 즉각 알리거나 회수할 의무가 없다. 한국의 경우도 생수 수질 검사는 생수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하게 돼 있고 수질 기준에 미달해도 일주일 내에 시도지사에게 통보만 하면 된다.
1990년 미국에서 명품 생수로 알려진 페리에 생수에서 허용치를 초과하는 벤젠이 검출됐다. 이 밖에도 곰팡이, 수산화나트륨, 녹조류, 효모가 검출됐다는 보고도 많다고 책은 날카롭게 꼬집는다. 2007년 아일랜드에선 생수의 6% 이상에서 대장균이 검출됐고 2004년 네덜란드에선 40%의 생수가 박테리아나 곰팡이에 오염됐다.
책의 논리는 간단하다. 물은 사유재가 아닌 공공재이고 파는 생수의 품질이 수돗물보다 뛰어나지 못하다. 그러므로 생수보단 수돗물에 물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는 것. 왜 수돗물인가. 수돗물 체계가 무너진다면 집에서 나오는 수돗물의 질은 떨어지고 안전한 물을 얻기 위해 부자만 값비싼 생수를 살 것이며 그러지 못하는 수십억 인구는 콜레라, 이질 등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1886년 미국 뉴욕 시의 공공 급수대에는 성경에서 인용한 문구가 써있었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안전한 수돗물이 값싸게 공급되는 지금이 좋은 때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