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생결단하듯 재·보선 막판 혼탁
정당들은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가 정당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처럼 사생결단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후보자들 역시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협박하는 수준이다. 선거 결과에 국가의 운명이 걸렸다거나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발언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선거의 패자들은 정말 정치에서 은퇴할 것인가? 미덥지도 않지만 국민이 바라는 바도 아니다.
이번 선거가 현 정치에 대한 국민정서를 읽을 수 있는 풍향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당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는 될지언정 향후 정치를 결정지을 모든 것은 아니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 미치는 영향도 지금 정당들이 외치는 것처럼 결정적이지는 않다. 선거를 치르는 지역이 전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유권자들이 내년 선거에서 같은 후보나 정당을 선택한다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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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지역대표와 국민대표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국민 전체를 위한 역할이 기본이지만 지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재선을 노리는 국회의원이라면 사실상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칠레 FTA 비준 당시 여야의 구분이 아니라 도시당과 농촌당으로 나누어졌던 기억을 되살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국 단위 총선이 아니라 재·보궐선거라면 지역대표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다. 1년 임기의 선거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당들이 운명을 걸 이유는 없다.
이제는 정치를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한두 석의 의석 변경이 정치 판도를 바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정당들의 도를 넘는 선거운동과 과장된 의미 부여는 타당치 않다. 지방선거도 중앙선거에 함몰되어 선거의 자율성이 훼손되는 마당에 재·보선마저 전국선거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정당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불필요한 부담을 안기는 것이다.
도 넘은 선거운동 표로 심판해야
정당들은 이번 재·보궐선거를 상향식 공천과 같은 개혁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그래서 혹시 선거에서 지더라도 국민들에게 개혁 의지와 실천 능력이 있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단기적 계산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정치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이다. 정당들은 벼랑 끝 전술을 택함으로써 선거에 이기겠다는 단기적 전술에 골몰하고 있다. 이번 주 국회 일정을 보면 위원회가 5개 열릴 예정이다. 지난주 35개의 각종 위원회가 열렸던 것에 비해 초라하다. 만일 재·보궐선거 때문에 많은 일정이 미뤄졌다면 국회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