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누출 후 정부 대응 미흡… 따끔한 지적 아쉬워”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19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동일본 대지진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번 재난은 단순히 지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진해일, 원전 사고, 방사성 물질 누출 등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겹쳐졌다는 점에서 여느 재난과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언론도 일반적인 재난 보도를 넘어 원자력과 방사능이라는 고도의 전문 영역을 다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 잘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민웅 위원=그동안 우리 언론의 재난 보도는 낯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통곡상업주의, 고통상업주의, 재난상업주의라고 할 만합니다. 예컨대 아이티 지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의 보도에서 그랬습니다. 유족들이 땅을 치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통곡하는 그 장면을 방송하고 사진으로 실어 손님을 끌어들인 겁니다. 일본 이재민 가운데 통곡하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엔 그걸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한 것입니다. 그냥 눈물을 죽 흘리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슬프게 하고 애간장이 타게 하는 법입니다.
윤영철 위원=이번 재난을 보면서 세 번 놀랐다고들 합니다. 지진, 지진해일, 원전 사고가 겹친 규모에 놀랐고, 일본 시민들의 질서 의식과 언론의 냉철하고 자제력 있는 보도에 놀랐다고 합니다. 또 매뉴얼에 의해 진행되는 사고 처리 과정에 놀랐답니다. 우리 언론이라면 이재민의 요구나 분노를 전달해서 정부가 빨리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텐데 일본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일본 언론이 좀 더 따끔하게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사태 수습 과정에 좀 모자라는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 위원장=일본인들의 질서 의식,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교훈을 많이 얻게 됩니다. 아울러 초기에 우리 국민이 일본을 돕자고 나선 것은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 누출 이후 정보 제공, 국제 공조의 요구와 같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나 조치는 미흡했습니다. 언론도 이런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했어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질학적 특징, 원자력발전 시스템의 차이점을 비교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좀 더 했어야 합니다.
―일본의 이번 재난은 언론에 주는 시사점이 많습니다. 우리 언론은 재난 보도와 관련해 어떤 점에 유의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윤 위원=재난 보도에서 신속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피해자 수를 구체화하는 데 너무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신속성과 속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난의 전개 과정에 따라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피해 규모를 남보다 먼저 알리겠다는 속보 경쟁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합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그 문제와 관련해 일본 언론의 보도에도 문제점이 있었음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이틀 동안 일본 언론 가운데 사망자가 10여 명에 불과하다, 남아시아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는 피해국들이 대피시설도 미비하고 재난 방송도 제대로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일본은 이런 것들이 잘돼 있어 사망자가 이만큼밖에 안 된다는 식으로 보도한 예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희생자가 3만 명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는데 말입니다. 이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합니다.
정 위원장=우리는 민방위훈련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대응 태세라든가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잘돼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매뉴얼에 따른 대응 조치 등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는 돼 있는데 필요할 때 제대로 작동할지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방재 강국이 선진국이다’ 시리즈는 시의 적절했습니다.
윤 위원=재난 보도는 재해가 발생하면 그게 곧 시작이고 복구가 어느 정도 진척되면 끝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원전 사고 때문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행형입니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거기에 매몰돼서 이 중요한 보도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관찰해서 보도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동아일보에서는 인터넷에 ‘지금 어디 있나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찾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반응이 좋아 여러 가지 사연, 응원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걸 좀 발전시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연결하면 국내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정 위원장=이번 재난 보도가 불행한 사건에서 피해자 가족 등의 모습을 전할 때의 기준을 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또 일본 정부의 매뉴얼에 따른,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대응을 보면서 국가 차원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는 기회도 됐습니다. SNS가 가십이나 퍼 나르는 게 아니고 생존자를 확인하고 피해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측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