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감독세계에 ‘신인류’ 출현
“감독 해보니 이기면 참 좋은 직업”
강적 앞에서 선발투수 커밍아웃
무안타 김상수에 “수비만 잘해”
칭찬하고 삭이는 ‘명랑 리더십’
역대 이런 유형의 감독은 없었다. 엄숙하고 비장한 감독 세계에 ‘신인류’가 출현한 느낌이다.
#1. 삼성 류중일 감독은 8일 SK전에 앞서 김성근 감독을 찾아 인사했다. 목소리가 우렁찼다. 김 감독이 “2승했는데 목소리에 왜 이리 힘이 있냐?”고 하자 “공동 2등 아닙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 김성근 감독의 말처럼 “감독 자리는 밥이 안 넘어가고 물이 안 들어가는” 나날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럼 좋을 때는 언제일까? “내가 대장이잖아요.” 류 감독의 ‘명랑한’ 답변이다. “이제 감독 된지 100일 됐네요. 부담감이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네요. 감독이요, 이기면은 참 좋은 직업이에요. SK 김 감독님이 말은 저래도 속으로는 좋을 거예요. 나도 이겨보니까 진짜 기분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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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 유격수 김상수는 7일까지 안타가 없었다. 명 유격수 출신 류 감독은 김상수를 불러 이렇게 격려했다. “너는 수비만 잘하면 된다. 안타 하나도 못 쳐도 된다.” 류 감독은 현역 시절 30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때 박영길 감독이 계속 기용해주고, 천보성 코치가 “수비만 잘해라”라고 했던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김상수는 8일 SK전에서도 환상적인 수비 능력을 펼쳤다. 첫 안타까지 나왔다.
류 감독에게도 “밥이 안 넘어가는” 때가 언젠가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때가 와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류 감독의 목표다. 이기면 내놓고 칭찬하고 지면 속으로 삭이기. 코치 때부터 결심한 ‘초심’이다.
일본프로야구 세이부의 와타나베 감독은 2008년 팀의 세대교체를 성공시키며 일본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이런 그의 야구를 두고 ‘관용력(力)’이라는 찬사가 붙었다.
한국버전 류 감독의 ‘명랑야구’는 과연 선수의 개성을 살리면서 승리라는 결실을 얻을까. ‘사람 좋으면 꼴찌’의 예외이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삼성팬 뿐만은 아닐 것이다.
김영준 기자 (트위터@matsri21)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