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범위’ 넘어선 재난땐 ‘매뉴얼’ 탈피해야 재건 가능
일본인들이 이번 지진을 2차 세계대전에 비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이번 재난이 ‘발달된 산업사회에 밀어닥친 가장 심각한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의 복합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태의 후폭풍 역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번 재난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어구는 아마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일 것이다. 지진해일(쓰나미)이 그렇게 많은 해안가 방벽과 예방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압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지진에 늘 노출된 일본이 오랜 기간 많은 노동과 기술력을 투자해 만든 시스템이 그렇게 허무하게 쓸려나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또 세계 최고 첨단도시인 도쿄(東京)에 전력의 30% 정도가 수개월 정도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08년 불어닥친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로 강력한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WMD)가 될지 상상할 수 없었듯이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인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금욕적이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며 약탈행위가 없었고 지역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은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지금 일본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겸양보다는 사상 초유의 도전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보여줘야 할 창의성이다. 일본의 미래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활발하고 치열하게 이뤄질수록 좋다고 본다.
나는 일본인들이 공동체를 재건하고 자신들의 인생을 다시 활기차게 만들어 나가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술력이나 경제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이 과연 창조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불행히도 불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과연 거역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응해 틀을 깨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앤드루 고든
■ 앤드루 고든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학)
―하버드대 라이샤워 일본학
연구소장(2011년 현재)
―하버드대 박사(일본사·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