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12번째 시집 ‘종이’ 펴낸 신달자 시인
신달자 시인(68)이 열두 번째 시집 ‘종이’(민음사)를 냈다. 시집에 담긴 일흔여섯 편의 시를 꿰뚫는 소재는 종이. 시집 전체가 ‘종이 예찬’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컴퓨터와 휴대전화, 전자책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종이에 대한 향수와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한편 종이의 이미지를 다른 사물에 투사시키며 상상력의 영역을 넓힌다. 출간을 앞두고 “연애할 때처럼 가슴 떨린다”는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만났다.
“종이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전자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종이를 만지고 때가 타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과 같지요. 하지만 기계는 달라요. 사람들을 점차 혼자만의 공간으로 내몰고, 삶의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죠.”
7년 전부터 종이와 관련된 시집을 내기로 하고 하나둘 시를 써 모았다. 100여 편 중에서 추려 모은 이번 시집에서 그는 종이의 의미를 파도, 뻘, 첫사랑, 대우주 등으로 확장한다.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생의 한 페이지를/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그 팔의 가락으로/푸르게 심줄이 떨리는/그 힘 한줄기로/다시/일어서고야 마는/궁극의 힘.’(‘파도’ 전문)
“종이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고 싶었지요.” 4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종이’를 낸 신달자 시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72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한 신 씨는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1993년), 에세이 ‘백치애인’(2002년)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과 에세이에서 더 명성을 얻은 것. 당시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에 동료 문인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등단한 지 40년에 가까운 그는 시는 도저히 정상에 오를 수가 없는 대상이고, 그렇기에 가장 완벽하게 매력적인 장르라고 했다.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죠. 이제는 제가 정말 바라는 시, 제 시의 본령을 찾는 게 소망입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