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어?” 王회장 도전정신 DNA로“해보자!” 현대家 車-조선 쾌속질주
1999년 현대자동차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미국을 방문한 정몽구 회장은 한국에서 열심히 만들어낸 차량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 회장은 곧바로 ‘품질경영’을 시작한다. 그러기를 10여 년,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 모두 89만 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1998년에 비해 10배가 늘었다.
21일은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타계 전 해에 벌어진 ‘왕자의 난’으로 아산이 이룩한 현대그룹은 크게 현대차,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등으로 쪼개졌다. 그룹의 뿌리였던 현대건설은 매각되는 시련을 맞았고, 1990년대 1등이었던 전체 현대그룹의 재계 순위도 삼성그룹에 밀리면서 1위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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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의 뚝심
1999년 당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가운데)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함께 인수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둘러보며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10여 년 전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를 물려받았을 때 아무도 세계 5위(기아차 포함 2009년 기준)의 자동차회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7일 미국에서 발표된 현대차의 내구품질 순위도 일반 브랜드 중 도요타와 뷰익에 이어 3위고 기아차도 9위를 차지했다.
김신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현대차그룹의 성장에는 아산의 개척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과감한 결단과, 일단 결정을 내리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기업가 정신이 정 명예회장의 기업철학이고 그게 지금의 현대차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과감함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아산이 타계한 2001년 현대차그룹의 매출액은 45조9000억 원이었으나 2009년 94조6500억 원으로 늘었다. 2000년 2조8600억 원이던 순익 규모는 2009년 8조4300억 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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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당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 위에 직접 올라가 작업지시를 하고 있는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배는 잘 만들지만 선박용 엔진은 수입하던 현대중공업은 1990년부터 10여 년 동안 총 400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2000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독자개발 엔진인 ‘힘센엔진’의 개발을 완성했다. 또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업용 로봇을 생산하며 KTX 등의 핵심 설비인 전기 추진 장치도 만든다. 이 덕분에 아산 타계 당시 전체 매출의 50%에 이르던 조선분야 매출을 30% 선으로 낮출 수 있었다.
김진수 중앙대 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아산의 경영은 혁신성 진취성 위험감수성으로 정리되는데 범현대가 기업들은 여기에 글로벌한 경영감각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2001년 8조4000억 원에서 2010년 말 기준 50조 원으로 늘어났다.
○ 대북사업과 흩어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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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적인 가치를 매우 중시하던 현대그룹이 ‘왕자의 난’ 이후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현대가의 숙제다.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앙금이 깊어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아직도 갈등의 골이 깊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