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이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핵심 쟁점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신용부문은 자본 건전성을 위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킬 자본금이 필요하고, 경제부문은 독자적인 사업을 위한 자본금을 필요로 한다. 원칙적으론 농협이 스스로 자본금을 마련해 금융자본이나 투기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체성을 지키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개정된 농협법은 불과 1년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부족한 자본금을 책임지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말 바꾸기와 얼버무리기로 일관해 앞으로 농협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는 농협의 정체성과 자율성, 농협 개혁의 성과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권 차원의 분명한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정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신경분리의 최대 명분인 경제사업 활성화에 대한 청사진도 불투명하다. 국회의 최종 심의과정에서 경제사업 활성화 조항이 삽입됐고, 이것으로 개정 농협법의 타당성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농협법 개정 시 경제사업 활성화가 명문화돼 2016년까지 다양한 사업이 진행된다. 농협법 개정이 실제로 경제사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했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의 성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우선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 그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신경분리의 진짜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음모론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신경분리가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광고 로드중
마지막으로 농협 개혁은 농민들과 가장 접점에 있는 지역농협의 개혁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농협 개혁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각자의 이해관계나 불만은 접어 두고 모두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농협 개혁,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