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하회마을··· ‘수출 40년’ 구미국가공단··· 형산강 옆 포항제철소··· “낙동강에 새 희망이 흐른다”
낙동강을 끼고 600년을 면면히 이어오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세계문화유산). 경북 문화의 자부심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노산 이은상(1903∼1982)은 ‘낙동강’을 이렇게 노래했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한가롭지 않다. 힘겨운 역사를 이겨낸 쓸쓸한 국토였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낙동강에 띄우고픈 강렬함이 흐른다. 이 시비(詩碑)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지구전적기념관 마당에 서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두 시인이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칠곡 왜관철교에 서서 낙동강을 바라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17일 오후 왜관철교를 걸어가던 주민들은 “물이 별로 없는 낙동강에 철교만 남아 있어 축 처진 분위기였는데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만 떠오르는 이곳에 생동감이 넘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이 1905년 경부선 철도로 개통한 이 철교는 1950년 8월 북한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일부 구간을 폭파한 사연을 안고 있다. 철교 인근 낙동강에서는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낙동강 지류인 포항 형산강 옆에 들어선 포스코 포항제철소. 영일만의 작은 어촌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낙동강은 강원 태백 황지못에서 발원하지만 ‘낙동’이라는 이름은 경북 상주시의 지명이며, 부산까지 전체 506km 가운데 경북 구간이 282km로 가장 길다. 낙동강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낙동강 프로젝트 같은 계획은 나오기 어렵다. 낙동강에 대해 경북 사람들이 유달리 관심과 자부심이 높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북도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그 후’를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 살리기에 대한 관심을 먼저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했다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새 옷을 입은 낙동강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안동 하회마을과 한국 수출을 40년 동안 이끈 구미국가공단, 낙동강 지류인 형산강을 끼고 들어선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모두 낙동강 덕분이었다는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신(新)낙동강 시대’를 열어젖히는 것이다. 외채를 끌어다 포항 영일만의 작은 어촌에 제철소를 세우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라는 온갖 비난을 딛고 들어선 포항제철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당당히 성장했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독도. 독도 지킴이정신은 경북의 자존심이다.
유교의 고장 경북 안동이 독립운동의 성지(聖地)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014년 상반기(1∼6월)에 경북도청이 이전하는 안동은 근대 최초의 의병인 갑오(1894년) 의병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유공자 및 자결순국자가 나온 고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하회마을 출신 서애 류성룡이 충무공 이순신을 발탁해 바람 앞 등불 같은 나라를 구했던 뿌리와 무관하지 않다.
경북도가 낙동강을 앞장서서 껴안는 것은 단순한 치수(治水) 사업이 아니다. 물 자원을 확보하고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나라를 지키고 삶을 살리는 ‘호국(護國)의 강’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도우며 잘살자는 새마을운동은 경북에서 싹을 틔운 뒤 방방곡곡에서 결실을 맺었고 이제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지구촌 잘살기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낙동강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동해의 ‘강산해(江山海)’가 이 같은 자신감을 에너지로 삼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내려고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살이 꽉 찬 영덕 울진 대게처럼 경북의 속살이 낙동강과 함께 더 큰 그릇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경 막사발처럼 좀 투박스럽지만 묘한 매력을 가진 그런 그릇이다. 뿌리 깊은 신라와 가야, 불교와 유교 문화를 일으켜 세우고 이를 힘으로 낙동강 살리기를 끌어내는 저력이 바로 ‘웅도 경북’의 혼(魂)이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