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모는 조각상 등 전시, 당시 비단도 다수 출품돼
낙타몰이 소그드인 나무인형(7세기·왼쪽)과 새와 양 무늬 비단 조각(7∼10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늘 물이 부족한 사막의 오아시스. 그곳 사람들은 한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이웃 오아시스와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실크로드에서 무역과 교류가 발달한 이유다. 사막을 오가는 상인들은 사막에서 발생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단으로 다녔다. 이것이 바로 대상(隊商)무역, 카라반이다.
이 같은 무역을 주도한 사람들은 소그드인이었다. 소그드인들은 지금의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오아시스 도시국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이 실크로드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소그드인은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꿀을 먹이고 손에 아교를 쥐여준다.” 아이가 성장했을 때 입으론 항상 꿀처럼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돈이 들어오면 아교처럼 절대 손에서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다. 소그드인들은 원래 이란계다. 그래서 이들이 머물렀던 곳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전이 있다.
‘실크로드와 둔황’ 전시장에 가면 소그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낙타를 몰고 길을 나서는 소그드인, 행낭을 지고 여행을 하는 소그드인의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다. 실크로드의 비단도 많이 출품됐다. 이들 비단은 특히 무늬가 아름답다. 꽃 새 사슴 구슬무늬(연주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이들 무늬는 고대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