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式 망명? 전두환式 권력이양?軍지지 얻으면 中톈안먼처럼 강경 진압할 수도
○1979년 이란혁명 ― ‘망명’
1979년 이슬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란혁명으로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 당시 이란 국왕은 망명길에 올랐다. 이집트에서도 시위가 계속 확대되고 군부와 미국마저 등을 돌린다면 무바라크 대통령은 망명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1987년 서울 ― ‘이양’
월스트리트저널은 31일 “가장 가능성 높은 결말은 정권이 레임덕에 빠지거나 이양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위기를 겨우 넘긴 무바라크 정권이 9월 예정된 대선까지 힘을 잃고 삐걱대거나, 자신이나 아들 가말 모두 차기 대권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서울의 1987년 6월 항쟁을 연상시킨다. 대학생이 앞장서고 야당과 재야가 뒤를 받치며 넥타이부대로 대표되는 중산층까지 동참한 6월 항쟁은 젊은층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와 공통점이 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며 민주화 요구에 굴복했지만 집권과정 및 재임 당시의 죄과에 대한 보복이나 처벌은 받지 않는 형태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집트는 민주주의 요구뿐만 아니라 절대빈곤에서 비롯된 경제이슈가 주요 동기이며, 1987년 한국처럼 중산층이 두껍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적 민주혁명을 이룰 사회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1989년 톈안먼 ― ‘유혈 진압’
무바라크 대통령이 유혈진압을 택하려면 군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군부는 진압에 무게를 두는 듯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에 절대 충성하는 중국 군부와 달리 이집트 군부는 연간 13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하는 미국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러나 스트래트포가 31일 이집트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군부와 경찰이 시위 진압작전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하는 등 군 지도부가 결국은 무바라크 체제 유지를 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