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 어제 장례식
고인의 관 위에 흙이 덮이기 시작하자 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 구름 사이로 잠시 햇빛이 빛났다. 그가 누운 오른쪽 옆에는 남편이, 바로 앞에는 아들의 묘가 있었다. 22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씨가 지상과 이별하는 순간이었다.
25일 고인의 장례가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로 치러졌다. 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 박범신 임철우 김영현 은희경 씨, 김화태 조광호 신부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정호승 시인은 조시 ‘선생님 ‘나목’으로 서계시지 말고 돌아오소서’를 낭독했다.
이해인 수녀가 추모 기도에서 “생명의 하느님, 진실하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상의 소유를 다 두고 눈 오는 날 눈꽃처럼 깨끗하고 순결하게 한 생을 마무리한 우리 어머니를,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려도 되겠지요?”라고 말하자 성당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장례미사를 마친 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1시경 경기 용인시 천주교공원묘지로 운구됐다. 지난해 출간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우리들(남편과 자신의 비석) 것보다 조금만 더 큰 봉분과 비석을 가진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도 저승의 큰 ‘빽’이다”라고 묘사했던 곳이다. 남편과 아들이 먼저 묻힌 이곳을 두고 생전 고인은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은 데도 산꼭대기가 아니고 골짜기라 우리 동네처럼 아늑한 게 마음에 든다”며 애틋한 심정을 표현했다.
고인의 관이 묻힐 때 가족과 지인들은 울먹이며 흰 국화꽃을 뿌렸다. 비석에는 남편의 이름 아래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져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만들었던 비석이다. 고인은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에서 “어떤 무덤도 잘난 척하거나 돋보이려고 허황된 장식을 하지 않는 평등한 공동묘지”라고 묘사한 그곳에 묻히게 됐다. 마지막까지 소박하기를 바랐던 작가의 소망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