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 않고 가꾸면… 활짝 피는 ‘적립식’
그래도 이 씨는 꿋꿋이 버티며 올해 1월까지 매달 80만 원을 꼬박꼬박 펀드에 넣었다. 현재 원금 3200만 원은 약 4500만 원으로 불어나 수익률은 40%를 넘는다. 만약 이 씨가 주가 하락을 못 견디고 중간에 납입을 그만뒀거나 적립식 대신 목돈 3200만 원을 똑같은 펀드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환매할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꾸준히 투자한 보람이 있다”며 “적립식 펀드 투자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지만 펀드 가입을 망설이는 투자자가 많다.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며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융위기 이후 원금 손실의 뼈아픈 경험으로 펀드를 외면하려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많이 오른 지금이야말로 적립식 펀드의 위력을 실감할 때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적립식 투자는 지금처럼 증시의 출렁임이 예상될 때 위험을 분산하면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 방법이라는 것이다.
○ 금융위기 거치며 수익률 고공행진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적립식 펀드 계좌는 지난해 11월 말 현재 976만5000개로 쪼그라들었다. 적립식 펀드는 2005년 말 562만 개에서 2008년 6월 말 1568만 개로 급증하며 가구당 한 개꼴로 보유할 만큼 인기를 누리다가 금융위기 이후 매달 20만∼30만 개씩 줄고 있다. 적립식 펀드 판매 잔액도 2009년 5월 78조 원을 정점으로 지난해 11월 말 56조 원대로 떨어졌다.
적립식 펀드가 비틀거리자 전체 주식형 펀드 시장도 2008년 말 140조 원에서 이달 19일 현재 100조7300억 원으로 급감하며 ‘100조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펀드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4년 반 만에 최저치를 보이며 42.75%로 줄었다. 임진만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적립식 펀드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온 데다 금융위기 여파로 투자 심리가 위축됐으며 원금 회복에 따른 환매 등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적립식 펀드는 변동성 먹고 살아
적립식 펀드의 우월성은 적립식 투자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매입단가 평준화 효과(cost averaging effect)’ 때문에 나온다. 모든 펀드는 첫 설정 때 기준가격 1000원(1좌=1원)으로 시작하며 수익률은 기준가격과 평균매입단가 비율로 계산된다. 한 번 돈을 넣는 거치식 펀드는 매입단가(기준가격)가 고정되지만 적립식 펀드는 납입할 때마다 기준가격이 변하기 때문에 주가가 비쌀 때 주식을 적게 사고 주가가 쌀 때 같은 돈으로 많은 주식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3개월간 매달 1일 10만 원을 납입하는데 둘째 달 주가가 20% 떨어졌다가(기준가격 800원) 셋째 달 다시 제자리(기준가격 1000원)로 돌아왔다고 하자. 거치식 투자라면 주가가 원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수익률이 0%다. 하지만 적립식은 첫 달 10만 원을 투자해 10만 좌가 생기고 기준가격이 떨어진 둘째 달 12만5000좌(10만 원÷800원×1000좌)를 사들인다. 셋째 달 다시 10만 좌를 더하면 누적 좌수는 총 32만5000 좌로 불어나 8%가 넘는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적립식 펀드는 주가가 출렁이는 상황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재순 제로인 평가실장은 “지금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고민하는데 적립식 투자는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가 상승할 때 수익률이 가장 좋다”며 “변동성이 커진 증시에서 적립식 투자로 단기 출렁임을 즐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주가 사이클이 평균 3년 주기로 등락을 반복하는 만큼 적립식 투자는 3년 이상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엽 미래에셋운용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적금과 비교해도 적립식 펀드 수익률이 훨씬 좋고 장기적으로는 변동성도 줄어든다”며 “목돈 투자도 ‘목돈관리형 적립식 펀드’를 이용하거나 분할 매수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적립식 펀드도 만기 매도 시점에 주가가 하락하면 성과가 달라지는 만큼 출구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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