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트’대본★★★★ 연기★★★★ 연출★★★☆ 무대★★★☆
2003년 국내 초연 이후 40대 배우들의 놀이터였던 연극 ‘아트’를 30대 초반 친구들 이야기로 바꿔 세대를 초월한 웃음을 안겨준 YB팀 3인방. 직선적인 대학교수 규태(정상훈), 섬세한 피부과 의사 수현(김재범) 그리고 우유부단한 문방구 주인 덕수(김대종·왼쪽부터)가 그려낸 이등변삼각형 구도의 심리적 의미를 씹어볼 만하다. 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즘 여심(女心)을 사로잡기 위한 ‘선수’들의 수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군자의 우정이건 남녀의 사랑이건 애당초 순수함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배우 출신의 여성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수컷들 우정의 치졸한 이면을 코믹하게 그린 연극 ‘아트’(연출 류현미)를 보면서 연암의 글들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제목인 ‘아트’를 작품의 소재가 된 예술뿐만 아니라 우정의 기술로도 해독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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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 숨겨진 미묘한 ‘우정의 삼각도’를 살펴보자. 엘리트인 수현과 규태는 제법 예술을 향유할 줄 안다는 지적 허영심을 갖췄다. 아마도 규태가 먼저 입문해 수현을 인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난 뒤 둘의 취향이 갈라서면서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그런 점에서 둘은 서로 닮았기에 서로를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짝패’다. 따라서 규태와 수현의 관계는 영화 ‘친구’의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관계의 닮은꼴이다.
반면 만사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덕수는 그 둘 관계의 완충장치다. 수현이 덕수에게 문제의 그림을 보이며 함께 박장대소한 이면에는 “예술을 모르는 네가 뭘 알겠니”라는 심보가 작동한다. 하지만 수현과 규태의 예술 취향의 우위를 결정할 캐스팅 보트를 덕수가 쥐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관용의 대상이 아니며 둘의 라이벌 의식에 불을 붙이는 부싯돌로 작용하게 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극 막바지에 이르면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덕수가 두 친구 사이의 불화 원인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가 빚어내는 욕망의 삼각도의 본질이다.
하지만 연극은 영화 ‘친구’와 달리 파국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직한 덕수 덕분이다. 정확히는 우정의 파국의 최대 희생양이 덕수라는 죄의식 때문이다. 이를 먼저 깨닫는 이가 수현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덕수에게 저지른 짓의 의미를 규태에게 일종의 행위예술로 일깨워 준다. 따라서 예술이란 뜻에서건 기술이란 뜻에서건, ‘아트’를 진짜로 이해하는 것은 규태가 아니라 수현이다.
연암의 글로 돌아가 보자. 강직한 규태는 연암이 말한 교유의 5대 기술을 무시한 진짜 군자일까. 반면 그 기술의 대부분에 정통한 덕수는 더 속물일까. 규태와 덕수 사이에 위치한 수현이 답을 쥐고 있다. 권세와 명세, 이익을 뛰어넘어 우정이란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다면 우정에도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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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30대 초반으로 구성된 YB팀과 류태호·윤제문(규태) 이남희(수현) 유연수(덕수)로 구성된 40대 중후반 OB팀의 공연을 비교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묘미다. 4만원.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마당 3관. 02-764-8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