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다” vs “무시는 안돼”
북한이 5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의 형식으로 ‘무조건적인 당국 간 대화’를 촉구한 데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국면 전환을 노리는 대화 공세”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대화 공세에 대응하는 방안을 놓고서는 주무 부처인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당국자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됐다.
○ 통일부, “진정성 없는 위장 평화공세”
통일부 당국자는 6일 “북한의 대화 제의는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말이나 선전 차원보다 진정성과 책임감 있는 행동이 따라야 대화를 시작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말 바꾸기’라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보여야 할 진정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핵 폐기 이행과 함께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에서 나왔듯이 도발에 대해 북한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연합성명의 형식과 발표 시기에도 의구심을 표시했다. 정부에 대한 공식 통지문도 아니고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에 맞춰 급조한 정황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7년까지 해마다 1월 중·하순에 연합성명을 냈다. 5일 발표는 전례 없이 빠른 것이라고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 외교부, “깡그리 무시해선 안 돼”
그러나 외교부 당국자는 “대화하자는 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의도는 의심되지만 일단 대화하자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며 “정부로서도 북한의 태도를 한두 가지 조건으로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보겠다고 했으니 상황관리 차원에서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외교부 측의 신중한 평가는 주변국의 북핵 6자회담 재개 움직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줄곧 대화와 협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하고 유효한 길이라고 여겨왔다”며 “북한의 제의를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북한의 대화 제의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일축해버릴 경우 북한이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도발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 북한 대화공세 시나리오는?
대남정책 기조를 3∼6개월 단위로 변경하는 과거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이번 대화공세도 짧으면 올해 3월, 길면 6월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우선 당국과 민간에 대한 분리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대화 제의를 선뜻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는 물론이고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할 의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춘궁기로 들어서는 상황에서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