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본인의 안목을 믿지그래.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김주원이란 남자가 매달릴 만한 여자거든.”
“이봐 이봐, 이러니 내가 안 반해.”
광고 로드중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을 찾아와 헤어지라고 하며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 운운할 때도 여자 주인공은 쏘아붙인다.
“김주원 씨, 저 좋아합니다. 저도 김주원 씨 좋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죽어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제 부모 욕보이면서까지 죽어도 못 잊을 그런 남자 아닙니다. 그럴 가치 없습니다.”
최근 끝난 드라마 ‘대물’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여성이 우연히 정치판에 들어가 정치권의 갖은 압력과 회유에도 기죽지 않고 자존심과 원칙을 끝까지 지키면서 결국은 대통령까지 오른다는 줄거리는 남자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둘 다 비현실적인 드라마여서 현실에선 저런 자존심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 국민은 자존심이나 체면 세우는 일에 물불 안 가리는 경향이 심하다.
광고 로드중
최근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민귀군경’(民貴君輕)도 바꿔 말하면 위정자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국민의 자존심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뜻이리라. ‘시크릿 가든’처럼 평범한 자존심을 살려줄 줄 알아야 인기도 끌고 열혈 팬도 생긴다. 경제와 복지가 평범한 장삼이사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한다면 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건 정치의 몫이다. 부모가 허구한 날 싸움질이나 하고 서로 가시 돋친 욕설만 퍼붓는 집에선 아이들이 자존감을 키울 수 없다. 자기 비하와 저항감만 늘 뿐이다. 새해가 된 지 닷새밖에 안 됐지만 여야가 상대에게 밀리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 살리겠다고 싸우는 모습은 지난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는 동안 국민들의 자존심만 멍들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또 하나. 우리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선 남의 자존심부터 세워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존심을 세워주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자존심을 세워주고, 스승과 제자가 서로 자존심을 세워주고….
서정보 교육복지부 차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