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속 대표 20년, 이규혁이 말하는 ‘이룬 것과 이뤄야 할 것’
올림픽 메달 획득 이외에는 다 이뤘다는 이규혁. 태릉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그는 내년이면 서른셋이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이 자꾸 눈에 밟혀 은퇴 시점을 고민 중이다.
○ 올림픽 생각? 지금도 잠이 안 와
대화 중 그는 유독 “올림픽만 생각하면…”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만큼 5번의 올림픽은 그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대회가 끝나면 경기를 녹화한 비디오를 봐요. 하지만 올림픽 녹화 비디오만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올림픽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와요.”
태릉스케이트장 외벽은 후배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이상 한국체대)의 전신사진이 걸려 있다. 만약 올림픽에서 그가 금메달을 땄다면 그의 사진이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 전까지는 제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올림픽 뒤 제 사진이 없어진 걸 보니 이게 현실이구나 싶더군요.”
○ 20년 대표선수? 할수록 힘들어
이규혁은 1991년 13세 때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 대표선수다. 내년이면 대표팀 생활 20년째. 국가대표 자리는 극소수다.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야 한다. 그의 존재는 후배들에게는 벽 또는 짐이 될 수 있을 법하다. “스피드스케이팅은 기록으로 평가되는 종목이에요. 제가 후배들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되면 당장 떠나야죠. 저에 대해 ‘똥차’라며 빨리 은퇴하라고 말하는 누리꾼의 댓글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하기도 하죠. 아직 후배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어요. 뒤처진다고 생각지 않아요.”
○ 은퇴요? 쉽게 말하기 힘들어
그는 이번 아시아경기 뒤 은퇴하겠다는 말을 했다. 정말 은퇴할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힘들게 입술을 뗐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은퇴 시기를 물어보는데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겠어요. 아직 올림픽 메달도 없는데…. 지금 몸 상태로 봤을 때는 2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2014년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가 은퇴를 망설이는 이유는 못다 이룬 올림픽의 꿈도 있지만 20년간 이어온 선수 생활을 접는 데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20년간 선수였어요. 선수는 주인공이지만 코치를 한다면 그때부턴 조연이죠. 시즌이 끝나면 한 달간 쉬고 다시 운동하고 대회에 나가는 생활을 계속했어요. 만약 그 이상 쉬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 잘 모를 것 같아요.”
만약 오랜 시간 뒤 아들딸이 “아빠는 왜 올림픽 메달만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예전 같으면 부끄러워했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부족함을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게 더 중요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규혁 프로필::
▽생년월일: 1978년 2월 8일 ▽체격: 174cm, 73kg ▽학력: 리라초, 신사중, 경기고, 고려대 경영학과, 고려대 체육교육대학원 재학 ▽가족: 아버지 이익환 전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 어머니 이인숙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 동생 이규현 피겨스케이팅 코치 ▽소속: 서울시청 ▽경력 및 수상: 1997년 무주-전주 겨울유니버시아드 500m 은메달, 1500m 동메달, 1998년 백상체육대상, 2007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종합우승, 창춘 겨울아시아경기 1500m 금메달, 500m 은메달, 월드컵 4차 1000m 동메달, 2008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 금메달, 월드컵 5차 500m 금메달, 2009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종합우승, 세계종목별선수권 500m 은메달, 월드컵 5차 500m 금메달, 2010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종합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