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미국의 기밀 외교전문 25만 건을 통째로 빼내 공개하자 세상이 뒤집어졌다. 그토록 내밀한 이야기들이, 무더기로, 빠르게 퍼져 나가자 표현의 자유를 외쳐온 우군들조차 난감해졌다.
“국제적 대화가 손상을 입었다”고 논평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점잖은 편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스티브 콜 기자는 “위키리크스의 행위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반달리즘”이라고, 워싱턴포스트의 마트 티에슨 기자는 “위키리크스는 범죄 기업”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제는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놓고 법률가들이 어떤 세기의 재판을 벌일지가 관심거리다. 하지만 어산지가 사라진다고 위키리크스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거대한 국가 권력에 맞서는 금발의 무정부주의자, 게다가 성 추문까지 더해진 할리우드식 드라마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진짜 주인공은 ‘폭로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정보기술이다. 어산지가 체포되자 그를 지지하는 사이버 해킹 집단 ‘익명(Anonymous)’이 한 말은 어산지가 싫은 사람이 들으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one, we are everywhere).”
30년 전으로 돌아가 미국의 베트남전쟁 비리를 담은 기밀문서 ‘펜타곤 보고서’의 유출 경위를 짚어보면 폭로의 기술이 얼마나 대중화됐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내부고발자 대니얼 엘스버그는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했던 펜타곤 보고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그는 보고서의 내용을 세상에 알리려고 7000쪽을 복사해 뉴욕타임스에 넘겼다.
위키리크스의 내부고발자로 알려진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엘스버그 같은 엘리트가 아니다. 자기는 내용도 모르는 외교전문이었지만 쉽게 접근했고, 손바닥만 한 CD에 담아 인터넷망을 통해 빛의 속도로 배포할 수 있었다. 디지털 정보는 유포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미국과 영국 기업들의 절반 이상이 사내 정보가 어디에 저장돼 있고, 누가 접근 가능한지를 정리해 놓은 ‘데이터 지도’조차 갖고 있지 않다.
위키리크스 사태 초기 영국의 한 블로거는 “에디슨을 옥에 가두었대도 밤이 어두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위키리크스가 탄압을 받는 사이 오픈리크스와 미니리크스 같은 유사 사이트가 속속 개설됐다. 문제는 위키리크스가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입증해낸 폭로의 민주화가 거대 기관과 개인 간의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 시장 실패를 해결할 수 있을지가 진짜 주목거리다.
이진영 인터넷뉴스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