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파산… 아들의 골수염… 모두 포기할까 했지만…■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 3년
영화감독 이창동 씨가 올 6월 22일 서울 구로구 연동로 성공회대 피츠버그홀에서 열린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 특강에서 저소득층과 노숙인 등 수강자들에게 ‘이창동과 함께 시를 읽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두용 씨(52)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밝은 목소리로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골수염에 걸린 외아들의 치료를 위해 10여 년 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여성 의류 매장을 차려 한때는 돈도 벌었다는 김 씨. 하지만 10년 전 불황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하고 가게를 정리한 김 씨는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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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김 씨에게 자활 의지를 북돋아 준 것은 6월부터 동국대에서 배우게 된 인문학 공부였다. 노숙인을 비롯한 저소득층에게 철학과 문화, 역사 등을 강의하는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수강한 것. 김 씨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공부할 기회가 없었는데 역사와 철학을 쉽게 가르쳐주니 재미가 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주일에 2번 있는 강의를 기다렸다. 수강생들과 사찰을 방문해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연극 공연도 관람했다. 김 씨는 “인문학을 공부한 뒤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열쇠기능학원에 등록하고 2급 자격증을 땄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지 고민 중이다.
○ 가족의 소중함 새삼 느껴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은 저소득층의 정신적 빈곤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돕기 위해 2008년 마련됐다. 2008년 209명, 지난해 121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김 씨 같은 지역자활센터와 자활근로사업 참여자 1436명, 쉼터 노숙인 512명이 참가해 1515명이 수료했다. 수료율은 2008년(66.7%)에 비해 8.3%포인트 높아진 7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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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심 회복이 저축으로 이어져
‘희망의 인문학’에서 기존 배움의 길고 짧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노숙생활을 하다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 살고 있는 김모 씨(49)는 한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 더듬거리며 글을 읽고 이름 석 자를 간신히 쓰는 한글 실력이지만 누구보다 ‘희망의 인문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종로자활센터 한재경 실장은 “처음에 김 씨를 상담할 때는 정서가 불안하고 자신감도 없었지만 ‘희망의 인문학’ 수업에서는 가장 먼저 와서 강의 준비를 돕는 등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종로자활센터의 자동차 광택·세차 사업단에서 자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희망의 인문학’ 수료자 중 243명은 희망플러스 통장 등 저축을 통한 자산형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소득층에게 직접적인 금품 지원도 중요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하고 정신적, 심리적 자활의지를 갖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