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한국영화는 끊임없이 해외 진출의 길을 모색해왔다.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상업적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시작이나 촉매제가 무엇이었든 지난 십여 년 간 급속하게 덩치가 커진 한국영화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해외 진출' 또는 '국제공동제작'이었음은 틀림없다. 특히 한국영화의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조성된 2005년을 전후해 이 현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 아시아 넘어 할리우드로 진출한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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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과는 좋지 못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각 나라의 제작 주체들 이 리스크를 최대한 분산시키려다 보니 특정국가의 문화적 색채를 중화시키려는 노력이 가해졌고, 이는 오히려 어느 한 나라의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영화를 끌고 가버렸다. 기존에 없던 시도이다 보니 철저한 시장조사나 충분한 데이터가 없었던 것도 문제가 되었다. 시작할 때의 기대와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과 고민으로 변해갔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각 국가간 다른 제작 환경에 대한 이해가 쌓여갔고, 교류의 범위도 넓어졌다. 특히 한국 스태프들의 경우 기술적 능력을 인정받아 인력의 해외 수출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펑샤오강 감독의 전작 '집결호'의 특수 효과와 특수 분장이 대부분 한국 인력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차태현 전지현 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2008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돼 '마이 쎄시 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마이 쎄시 걸' 포스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할리우드와의 접촉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전 세계 문화산업의 패권을 쥐고 있는 할리우드와의 첫 단추는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소재 고갈에 시달리던 할리우드는 '시월애' '장화홍련' '엽기적인 그녀' '중독' 등 독창적인 한국영화의 이야깃거리에 주목했다. 이 중 일부는 영화화되었고 일부는 아직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영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리메이크 판권이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의 단추는 한국 배우들이 채웠다. 정지훈 이병헌 김윤진 등이 아시아에서의 스타파워를 배경으로, 또는 개인적인 도전으로 하나씩 할리우드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원하게만 보였던 할리우드의 높은 장벽이 넘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뚜껑 열어보니 실망스럽다는 관객들 평가…
이런 시점에 '워리어스 웨이'(감독 이승무)가 지난 1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 ''반지의 제왕' 제작자 배리 오스본 제작,' '슈퍼맨의 그녀 케이트 보스워스 출연' 등 각종 화려한 수식어를 달며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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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스 웨이'는 웨스턴 카우보이와 동양의 검객이 부딪히는 판타지적인 볼거리에 집중해야 하는 '가벼운' 영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가벼운 영화'다. 편한 마음으로 구경하기에 좋은 100분짜리 팝콘 영화다. 소재의 사실성이라든가 이야기의 개연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거대한 서사 스케일이라든가 치열한 정의감, 또는 아스라한 로맨스로 무장한 기존의 무협영화와도 거리가 멀다. 느긋이 의자에 몸을 맡기고 웨스턴 카우보이와 동양의 검객이 부딪히는 판타지적인 볼거리에 눈을 맞추라는 것이, 이 영화가 요구하는 최적의 관람태도다.
그러다 보니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 국내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스펙터클과 슈퍼스타 장동건이라는 포장을 두른 워낙 소문난 잔치이다 보니 먹을 것 없다는 불평이 더 크게 들린다.
▶ 영화의 기본적인 뼈대를 모두 한국이 세운 첫 합작영화
그렇다면 '워리어스 웨이'는 단순히 또 한편의 실패한 합작영화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화 자체의 내용과는 별도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에는 평가할만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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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신인이었고, 시나리오 역시 신인 감독이 쓴 것이었습니다. 장동건이라는 아시아의 큰 스타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은 매력적일 수도 있었지만, 이는 반대로 할리우드에서 검증 받지 못한 배우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투자 유치에 필요한 패키징에 객관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죠."
이 영화의 공동 프로듀서를 맡은 보람 영화사 남종우 PD의 설명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의견에서 출발한 '워리어스 웨이'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프리 프리 프러덕션(pre-pre-production) 이라 할 수 있는 최초 기획단계의 투자위험은 한국 측 제작사가 부담했다. 그리고 이 투자금의 많은 부분은 할리우드의 투자자들에게 영화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한 작업에 쓰였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액션을 제대로 구현해 보여주기 위해 CG로 동영상 콘티를 짠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pre visualization)과 영화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컨셉트 아트(concept art) 작업 등 구체적이고도 과감한 노력이 이때 이루어졌다.
영화 '워리어스 웨이' 포스터
이처럼 제작비의 절반도 투자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객관적인 추가 투자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프리 프로덕션을 밀고 나가는 것은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무모한 짓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할리우드가 갖추지 못한 한국 영화계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수치나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영화계의 저력은 독창성과 뚝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최종 순 제작비는 약 5,200 만 달러.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중급 영화 수준이다. 이 중 한국 측에서 투자한 금액은 25% 가량 된다. 그나마 기획 초기 단계에 투자된 금액은 전체 제작비의 10%도 되지 않는 돈이었다. 그러나 이 돈은 영화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종자돈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투자 금액의 규모와 상관없이 마지막까지 공동 제작자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워리어스 웨이'는 스튜디오 영화가 주류를 형성하며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러한 제작 방식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할리우드의 많은 인디 영화가 미니 메이저의 투자를 받거나 배급망을 타고 관객을 만나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에 한국 영화계가 첫 발을 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획, 미국과 인도의 투자, 그리고 뉴질랜드의 제작 기술이 결합되었다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최종 수익성은 어떻게 될까.
남종우 PD는 "영화 제작비 측면에서 볼 때, 5, 6천만 불 수준의 규모라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질 수 있다. 1,2억 불씩 들어가는 스튜디오 블록버스터의 경우 워낙 그 리스크가 크지만, '워리어스 웨이'와 같은 중급 인디 영화는 극장 박스오피스에서 어느 정도 성적만 내어 주면 홈 비디오나 기타 부가판권 시장에서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가 최종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수익성의 측면에서 최소한의 성공 사례가 된다면, 한국영화는 더욱 다양한 제작 방식을 시도하는 데 있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례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합작 영화의 수가 연간 수십 편으로 늘어났음에도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없는 시점이기에, 이는 더욱 의미가 있다.
이미 한국영화는 국내 시장만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합작 영화에서 우리 문화가 얼마나 잘 결합되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에게 너무 감성적인 질문일 수 있다. 영화 산업에서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진 세계적 추세로 볼 때 합작 영화의 국적을 따지는 일에 너무 매달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늘 냉정하다. 합작영화에 대해, 또는 할리우드 진출작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는 관객이 결정할 몫이다. 그리고 이 냉정한 평가를 어떻게 자양분으로 삼는지는, 세계화를 향해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당면 과제일 것이다.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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