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도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은 대개 비슷하다. 위스키 중에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선호하고 대다수가 보이차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점은 같은 주류인 와인과 싱글 몰트위스키의 비교보다는 와인과 보이차의 연관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싱글 몰트위스키와 보이차에 대한 필자의 일천한 지식에 비추어 봐도 와인과 더 많이 닮은 쪽은 역시 보이차다.
와인과 보이차를 놓고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발효’다. 와인과 보이차는 전 세계 발효식품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포도와 찻잎은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복합적이고 다양한 맛과 향을 얻는다. 어디서, 어떤 품종으로,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무한대로 바뀌지만 어떻게 보관하고 얼마만큼 기다렸느냐에 따라서 한 번 더 무한 변신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와인과 보이차다. 일반인 관점에선 골치 아프게만 보이는 이런 변수들이 애호가에게는 도전의 대상이요, 때로는 과도한 집착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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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보이차 모두 ‘지역 한정’이란 특성을 가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보이차는 이름부터 아예 ‘보이’라는 지역을 내세워 그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고, 와인 역시 지겹게 듣게 되는 테루아르나 원산지 통제 명칭 같은 용어도 모두 장소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등급, 진위, 고유한 개성 등 와인과 보이차에 부여된 모든 가치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 지역이라는 한계 덕분에 이들에 부여된 희소성 또한 무용지물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이 둘이 가진 금전적 가치도 더는 논할 수 없게 된다.
와인과 보이차를 주제로 단행본을 써 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닐 만큼 이 둘의 유사성은 이 밖에도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도 꼭 말하고 싶은 점은 둘 다 그저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일상의 촘촘한 긴장감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쉼’ 혹은 ‘여유’라는 코드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와인과 보이차는 바쁜 일상 속의 우리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지혜와 여유를 일깨워주는 삶의 소품들이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삭숨 제임스 베리 비니어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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