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벌써 11년 전 일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그 광화문 계단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놓였다. 다시 석고붕대를 무릎에 대더라도 이젠 오르내리는 데 불편이 없다. 휠체어 장애인은 어떨까. 세종로 사거리의 동서남북에 횡단보도가 생겨 역시 아무 문제없다. 에스컬레이터며 횡단보도라는 게 비장애인에게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시설이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다르다. 불가능과 가능의 접경을 넘나드는 ‘엄청난’ 시설이다. 그런 변화, 과연 어디서 올까.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쏟아지는 소나기의 빗방울을 개미 입장에서 바라보는….
장애인스키의 메카가 된 ㈜강원랜드의 하이원 스키장이 좋은 예다. 10여 년 전 김광식 당시 강원랜드 사장으로부터 스키장 건설 계획을 듣고는 주저 없이 설계 최우위 가치에 ‘장애인’을 두라고 조언했다. ‘장애인이 불편 없이 스키를 탈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스키장이 아니겠는가’라는 평소 생각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스키장은 그렇게 설계됐고 하이원은 개장 즉시 최고 스키장으로 등극했다.
그뿐일까. 스키를 안 타도 모든 장애인에게 하이원의 설산정상은 열려 있다. 휠체어장애인, 시각장애인이 눈 덮인 백두대간의 산줄기와 설경을 편안히 감상하기란 글쎄…, 하이원 아니면 언감생심이다. 주차장과 산정을 잇는 동선 자체가 장애인을 위해 설계되고 시공돼서다. 그래서 하이원 스키장에 가면 감회가 남다르다. 광화문 계단 앞에서 체험한 그 난감함이 이런 뜻하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데서 느껴지는 가슴 뿌듯함이다.
요즘 지리산 등 국립공원 정상의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반대의 초점은 ‘환경파괴’고 찬성의 논지는 ‘관광입지’다. 어느 누구도 틀렸다고 나무랄 수 없는 건강한 토론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자연 접근권’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어서다. 비장애인이야 케이블카가 없어도 그만이다. 그냥 오르면 되니까. 그러나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는 다르다. 그들에게 천왕봉은 오를 수 없는 불가능의 장벽이다. 그러나 천왕봉에서 해맞이할 권리는 그들에게도 똑같이 있다. 성숙한 사회란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회가 아닐지.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