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수는 없다” 게임에서 키운 승부욕, 공부에 쏟아부었어요
서울 휘경중 3학년 김병우 군은 “함께 게임하며 놀던 친구가 성적이 크게 오른 것을 보고 라이벌 의식을 느낀 뒤부터 공부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보다 레벨이 5단계 높은 친구와 일대일 결투를 하게 됐어요. 제 캐릭터가 친구 캐릭터를 10대는 때려야 이길 수 있다면, 친구는 저를 3대만 쳐도 이기는 거예요. 레벨에 따라 게임 캐릭터의 체력이 결정되거든요. 게임 내내 밀리다가 결국 제가 졌어요. 얼마나 분하던지! 잠도 안 오더라고요.”
김 군은 곧바로 캐릭터를 정비했다. 다른 기능들은 포기하고 오로지 일대일 결투에 강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체력 게이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설정을 다시 했다. 무기와 액세서리 아이템도 결투에 유리한 것으로만 구입했다. 다음날 재결투를 신청한 김 군. 보기 좋게 친구를 이기고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는 “친구가 나보다 레벨이 높다는 점을 알았지만 내가 진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싫었다”고 했다.》
1학년 때만 해도 김 군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 성적은 평균 82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특별히 느끼지 못한 탓인지 수업시간에 졸기도 많이 졸았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2학기 성적은 평균 77점. 전교 302명 중 106등이었다.
2학년이 되자 성적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시에 2학년 내신 성적부터 반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던 그의 투지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건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던 친구였다. 1학년 때 비슷한 성적이었던 친구는 2학년 첫 시험에서 평균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김 군의 점수는 평균 82점….
“깜짝 놀랐어요. 성적이 오른 비결이 뭐냐고 물어도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갑자기 제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승부욕에 발동이 걸렸다. 수업태도부터 바꿨다. 선생님의 강의가 곧 시험문제라고 생각하니 졸음이 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엔 바로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훑어봤다. 점심시간엔 20분 동안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은 학교 도서관에 가 교과서를 읽었다.
결과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으로 나타났다. 평균 88점, 전교 등수 49등. 1년 만에 전교등수가 약 50등 오른 것이다. 주요 교과 중에선 수학성적이 특히 뛰어올랐다. 1학년 때 전교 117등으로 마감했던 수학성적은 2학년 말 전교 54등이 됐다.
○ 친구들에게 문제풀이법을 설명하다 수학교사를 꿈꾸다!
주요과목 성적은 크게 올랐지만 전 과목 평균점수는 90점을 넘기기 어려웠다. 특히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과목의 필기시험이 문제였다. 공부하기가 싫어 시험 전날 대충 훑어보기만 하니 음악과 미술 시험점수는 각각 전교 124등과 200등에 그쳤다.
3학년이 되자 고교 입시가 피부에 와 닿았다. 이전까진 잔소리로만 느껴졌던 “지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비로소 머리에 맴돌았다. 김 군은 귀가하자마자 2시간씩 게임을 하던 버릇을 고쳤다. 그 시간을 복습으로 채웠다.
암기과목이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말고사 한 달 전부터는 그날 배운 암기과목 내용을 틈틈이 익혔다. 교과서를 읽으며 맥락을 이해했을 뿐인데도 시험 전날이면 내용을 외우기가 훨씬 수월했다. 김 군의 3학년 1학기 성적은 전교 40등 초반 대를 유지하더니 2학기 중간고사 때는 드디어 평균 90점을 넘었다. 정확하게는 94점. 전교 21등이었다.
김 군은 수학교사가 되고 싶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풀이법을 설명해주면서 갖게 된 꿈이다.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 난감해하던 부분을 친구들이 똑같이 고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 군은 어느덧 친구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이해주는 기술을 익히게 됐다. 그러자 “너 정말 잘 가르쳐 준다”는 친구들의 칭찬이 돌아왔다. 처음부터 직접 풀이과정이나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한 발상을 떠올리고 풀이법도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돕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친구가 제 힘으로 답을 구해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고.
김 군은 “나중에 진짜 수학선생님이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단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수학선생님이 꼭 되고 싶다”며 웃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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