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청 야간 징수 현장 가보니…
서울 성동구가 최근 서울시내 25개 자치구로는 처음으로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세금징수를 하는 야간 체납 징수반을 만들었다. 지난달 13일 체납 징수반 직원들이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네… 네? 어디요?”
순간 집 안에서 들리던 야구 중계 소리가 사라졌다. 동시에 뭔가 후다닥 뛰는 소리도 들렸다. 10초 정도 흘렀을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고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문 앞 구청 직원 3명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혹시나 다시 문을 닫을까 구청 직원들은 일단 몸으로 문을 막고 준비해온 대사를 읊었다.
내겠다, 안 내겠다 말 대신 집 주인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이 시간에, 참….”
지난달 13일 오후 8시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 집주인도, 구청 직원도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곳은 성동구가 야간 체납 징수 업무를 시작한 현장. 상습 체납자 및 고액 체납자가 주로 주간에 집을 비워 세금 징수에 어려움을 겪자 성동구가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처음으로 야간(오후 7∼10시)에 체납자 집을 찾아가는 ‘야간 체납 징수’ 제도를 만들었다. 야간반 직원 3명이 이날 3시간 안에 만나야 할 체납자는 총 10명. “대낮보다 일정이 더 빡빡해 저녁 먹을 틈도 없다”는 성동구청 세무과 직원들. 이들의 ‘밤일’을 따라가 봤다.
○ 초대받지 않은 밤 손님 vs 꼭 만나야 할 체납자들
체납자들이 오죽 세금을 안 냈으면 구청에서 야간반까지 만들었을까. 성동구가 야간 체납 징수반을 만든 것은 단순히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성동구가 걷지 못한 세금은 약 252억 원(결손처분액 포함)으로 이 금액은 성동구 한 해 예산 2756억 원의 9%에 해당한다. 야간반 팀장인 박문식 세무2과 체납징수팀장은 “성동구는 25개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가 최하위 수준”이라며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밤에라도 체납자 집을 방문해 세금을 거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간 체납 징수 현장은 대낮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부드럽게 설득한다는 점. 대낮 같으면 “세금 안 내시면 불이익 받습니다” 식으로 겁을 준다면 밤에는 체납자들을 최대한 다독인다. 이를 위해 야간반은 화법 교육까지 따로 받는다. 체납자를 부르는 호칭도 ‘씨’ 대신 ‘선생님’으로 높여 부른다. “지금 돈 못 벌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내냐”며 40대 남성이 항변하자 박 팀장은 “분할로 내시면 됩니다” “선생님 힘드신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며 다독였다. 그러자 40대 남성은 “나도 사업할 때 수금이 가장 힘들었다”며 오히려 찾아온 구청 직원들을 격려했다.
○ “선생님께서…” 화법 교육까지
부드러운 설득 덕분인지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체납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심을 풀었다. 세금 1700만 원을 내지 않은 응봉동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야간반 직원들이 “선생님 힘드시죠”라고 조심스레 말하자 주인은 “사실 우리가 많이 밀리긴 했다”며 순순히 시인했다. 야간반 이두진 주임은 “낮에는 10명 중 3명도 못 만나지만 밤에는 7명 정도는 만난다”고 말했다. 체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성동구만이 아니다. 서울시도 500만 원 이상 고액 체납 건수는 16만4000건, 액수는 4292억 원에 이른다. 건수와 체납액 모두 늘고 있지만 징수율은 10% 내외에 머물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요리조리 단속반을 피하며 세금을 안 내는 지능범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체납자들을 잡기 위한 아이디어 전쟁을 펴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체납자 집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고 1000만 원 이상 고액 체납자 335명의 은행 대여 금고를 압류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배째라 고액 체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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