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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 국군포로 할아버지 한국 도착

입력 | 2010-11-02 16:53:57


3월 탈북을 감행했지만 정부 간 협상이 늦어져 재외공관에 마련된 숙소에서 8개월째 홀로 머물러 왔던 탈북 국군포로 A씨(84).

'59년 만의 귀환'.

올 3월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의 한 재외공관에 머물면서 추석 연휴 때 고국의 동포들에게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게 해달라"는 눈물의 편지를 보냈던 국군포로 김모 씨(84)가 2일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탈북해 생환한 국군포로는 80명이 됐다.

▶본보 9월 25일자 A1면 참조
[관련기사] 84세 탈북 국군포로가 南으로 보낸 ‘추석 편지’

이날 제3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김 씨는 오후 3시 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60년 만에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김 씨는 정부기관의 간단한 조사 절차를 거친 뒤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 상봉할 예정이다.

김 씨는 60년간 오매불망 그리던 남녘의 고향땅을 밟기 위해 북한의 가족과 생이별하고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지만 정부 간 협상이 늦어지면서 제3국에서 8개월 가량 발이 묶여 있었다.

왼쪽 팔다리 마비로 자리에 누운 채 기약 없는 귀환을 기다리던 김 씨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18, 19일 해당 공관을 찾은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에게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게 해달라"며 눈물을 쏟으면서 고국의 동포들에게 A4용지 21쪽 분량의 장문의 편지를 건넸다.

이 편지는 당시 동아일보를 통해 자세히 소개됐다.

1927년생인 김 씨는 1950년 4월 윤모 씨(당시 21세)와 결혼한 직후 6·25전쟁이 터지자 국군에 자원입대해 국군 3군단 3사단 18연대 2대대 6중대 소속으로 1951년 5월 강원 인제군 가리봉(설악산 소재해발 1519m) 방어전투에 투입됐다가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인민군에 발견돼 평양 인민군 중앙병원에 후송되면서 국군포로 신세가 됐다.

명절이나 생일 때마다 고향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다 올 3월 84세 생일날 인민학교(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 4학년인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해 부른 '타향살이 몇 해던가¤'로 시작되는 '계몽가요'(A 씨의 표현)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본 가족들이 '아버지를 고향으로 보내드리자'고 결심해 탈북길에 나섰다.
아들 며느리 딸 등 온 가족의 도움으로 탈북 브로커의 등에 업혀 압록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했지만 한국 정부와 그가 머물고 있는 제3국 간 교섭이 제대로 되지 않아 8개월째 재외공관에 머물러왔다.

김 씨는 편지에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중립국감독위원회가 포로 귀환을 위해 각 부대를 순회 조사했지만 대부분의 국군포로는 평안남도 양덕, 맹산의 골짜기로 끌려가 은폐돼 있다가 평양 순안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어 일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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