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리옹 국립 오페라 발레단, 마츠 에크의 ‘지젤’ 내한 공연안무 ★★★★☆ 무용수 기량 ★★★★ 무대·의상 ★★★★
지난달 29, 30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마츠 에크 안무의 ‘지젤’ 2막. 머리에 흰 붕대를 감은 지젤이 정신병원으로 자신을 찾아온 힐라리온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춤을 춘다. 사진 제공 성남아트센터
원작에서 순진한 시골처녀 지젤은 연인 알브레히트의 정체가 약혼자 있는 귀족이란 걸 알고 그 충격에 실성해 죽는다. 그 2막은 낭만주의적 환상에 어울리는 깊은 숲 속 무덤가에서 벌어지는데, 빌리라는 처녀 귀신들의 일원이 된 지젤이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동료들의 뜻과 달리 무덤을 찾아온 알브레히트를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때 지젤이 죽음 대신 정신병원에 갔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보다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수정했는지, 춤이 새로운 상황에 맞고 창조적인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에크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크의 ‘지젤’은 원래 자신의 어머니가 설립한 쿨베리 발레를 모자(母子)가 함께 이끌던 시기에 만든 것이고, 에크의 아내인 안나 라구나가 첫 지젤을 춤추었다. 이후 에크는 자신의 의지로 쿨베리 발레를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내한한 리옹 국립오페라발레단은 그의 단체가 아니다. 이 무용단은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춤을 소화하는 단체의 하나로서 수많은 현대 안무가의 작품을 섭렵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체득한 유연함이 이번 공연에 반영되고 있었다.
에크가 위대한 점은 일견 엽기적인 동작들로 한 편의 드라마를 유기적으로 완성하는 능력에도 있지만 차가운 지성이 압도하기 쉬운 오늘날의 공연예술에서 따스한 인간미를 슬그머니 채워 넣는다는 미덕도 놓칠 수 없다. 원작에서 아무런 동정을 받지 못한 채 빌리에게 살해당했던 지젤의 약혼자 힐라리온에게 에크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벌거벗은 채 자연으로 돌아온 알브레히트를 발견한 힐라리온이 원수나 다름없는 그를 공격하려던 마음을 바꾸고 커다란 천을 가져와 알몸의 알브레히트를 덮어주는 것이다. ‘잠자는 미녀’에서도 마약중독자와 유럽 주류사회에서 천대받는 유색인종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었던 에크는 무용계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유형종 무용·음악 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