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만에 인수작전 끝… 日기업문화 존중해 연착륙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 M&A보다 현지에서 직접 공장이나 회사를 설립하는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에 주력해왔다. 설사 해외 기업을 인수해도 한국보다 경제 발전 단계가 낮은 나라의 기업을 사들일 때가 많다. 지난 몇 년간 공격적으로 선진국 기업을 사들인 중국 기업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선진국 기업을 인수한 소형 금융회사가 있다. 바로 리딩투자증권이다. 이 회사는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8년 11월 일본의 소형 증권사인 지크증권(현 일본 리딩증권)을 인수했다. 이는 국내 증권사가 일본 증권사를 인수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리딩은 올해 초 영국 주식위탁 매매(브로커리지) 의사결정 솔루션 제공업체인 아이앤디엑스 홀딩스도 사들여 선진국 기업 인수와 관련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 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고조됐을 때 한국의 소형 증권사가 선진국 기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리딩은 치밀한 준비와 과감한 결단으로 선진 금융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했다. 경영 전문 저널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서울대 경영대의 임원 교육과정인 서울대 CFO전략과정과 공동으로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를 개발해 연재하고 있다. DBR 68호(2010년 11월 1일자)에 실린 리딩 M&A의 성공 요인을 간추린다.
DBR 일러스트레이션
리딩은 2008년 8월 대주주로부터 매도 의사를 확인하고 인수 작업에 돌입해 3개월 후인 2008년 11월 모든 계약을 완료했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자국 기업이 아닌 해외 기업을 3개월 만에 인수한 것은 이례적으로 빠른 업무처리라고 볼 수 있다. 리딩은 인수 추진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될 문제를 △안정적 경영권 확보 △소액주주의 지분 인수 요구 대처 △인수 후 부작용 최소화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했다.
우선 리딩은 단계별 지분 인수로 평균 취득단가를 대폭 낮췄다. 2008년 11월 리딩이 구주 인수 및 3자 배정 증자로 지크증권 주식 59%를 인수했을 때 주당 인수가격은 950엔이었다. 이후 경영이 안정되자 1년 후인 2009년 12월 주주배정 증자를 단행해 지분을 68%로 늘렸다. 이때 주당 인수가격은 400엔이었다. 환율을 감안한 1단계 주당 인수가격은 1만5000원대였지만 2단계에서는 4900원에 불과했기에 전체 평균 인수 단가는 8000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만큼 자금 부담도 줄었다.
▼ 日직원도 한국처럼 개인별 인센티브 도입… 1년후 흑자로 ▼
인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도 마련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물론 현금 관리에 집중해 월간 단위로 현금 보유액 증감 상황을 점검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화상회의 등을 통해 한국 일본의 보고 및 관리체계 통합화도 시도했다.
○ 보상체계 변경 및 수직적 업무 지시 탈피
금융업의 핵심은 사람이다. 조직원의 마음을 얻고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면 아무리 싼값에 해당 기업을 인수했다 하더라도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리딩은 △직원 의사를 반영한 임원진 개편 △수직적인 업무 지시 지양 △보상체계 변경 등 인수 후 통합 작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박대혁 부회장은 “인수 과정 중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더니 대주주와 직원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킨 임원이 있었다”며 “인수 작업이 끝나기 전에 그를 포함한 일부 임원을 교체했더니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한국의 정보기술 환경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금융업에 그런 특성이 얼마나 많이 반영됐는지를 일본 직원들은 잘 모르더라”라며 “‘한국에서 뭐 배울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왔다가 적잖이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본사 인력 파견도 최소화했다. 3개월의 인수 과정 중에는 M&A를 담당하는 5명의 본사 직원이 일본에 상주했지만 이후 모두 철수했다. 또 본사 측 인사와 M&A 자문을 담당했던 일본인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 대표 체제를 택했다.
영업직원의 인센티브 체계도 직원들에게 유리하게 변경했다. 과거에는 개인별 실적을 고려하지 않고 부서나 회사 전체 실적을 감안해 인센티브를 지급했기에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리딩은 1인당 생산성 지표를 도입해 개인별 실적을 인센티브에 반영했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은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일본 리딩증권은 2008년 11월 인수 후 불과 1년이 지난 2009년 말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리딩은 당초 3년 정도 적자를 각오했지만 예상외로 흑자 전환이 손쉽게 이뤄졌다. 일본 리딩증권은 올해 약 10억 원의 영업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 남다른 주식 인수가격 평가 방식
M&A가 종종 기약 없는 난항에 빠지는 이유는 인수가격에 대한 양자의 극심한 견해차 때문이다. 어떤 거래에서건 사는 사람은 최대한 싸게, 파는 사람은 최대한 비싸게 팔고 싶어 하므로 가격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리딩은 인수가격 평가를 위해 초과이익모형(RIM) 방식을 사용했다. RIM은 투자 원금인 자기자본과 자기자본비용을 초과하는 이익의 현재 가치를 합한 금액을 자기자본 가치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RIM이 과거 널리 쓰였던 다른 방식(배당 할인모형, 현금흐름 할인모형 등)보다 우수한 이유는 불필요한 가정을 줄여 평가수치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RIM이 완전무결한 방식은 아니지만 많은 회계학자의 연구를 통해 다른 모형보다 정확한 수치를 제공한다는 점이 입증됐다. 이 때문에 매도자에게 왜 이런 인수가격을 산정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도, 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다.
이흥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한국이나 일본 기업이 잘 쓰지 않는 새로운 모형을 쓸 정도로 우리가 인수가격 산정 시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준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황이석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Ishwa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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