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반환 문제가 제기된 1992년 10월부터 현재까지 20여 년을 의궤 297권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다. 다른 자료에 대해서는 왜 언급을 하지 않는가? 외규장각에서 온 물건 모두를 우선 파악하고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에 그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대여다 뭐다 해서 무엇인가 성사가 돼도 반환 얘기는 끊임없이 다시 제기된다. 1866년 이래 150년을 의궤 없이 살아왔는데 무엇이 그리 급한가?
로즈(Roze) 제독이 BNF에 넘겨준 자료의 정확하고 확실한 목록이 있다고 내가 금년 3월에 밝힌 바 있다. 그 목록에 있는 것만도 351점이다. 그중에는 보물급의 ‘동아시아(중국 한국 일본) 지도’가 들어 있다. 일명 ‘1595년 왕반 천하여지도’로 알려져 있다.
신문 보도를 보면, 프랑스가 그냥 대여를 해 줄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책이 BNF 동양필사본부 수장고를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없다고 본다. 의궤가 떠나면 비게 될 자리를 채울 한국 도서를 한국이 제공하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BNF의 보존 책임자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자료가 소장된 수장고의 열쇠를 정치인이나 외교관에게 선뜻 넘겨주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외규장각 도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새로, 한국의 규장각 및 장서각과 프랑스의 BNF의 전문가가 마주 앉아 모든 자료를 파악하고 확인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 다음에 실제로 무슨 방법이 가능한가부터 논의해야 옳다고 본다.
이진명 프랑스 리옹3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