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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소년 황제’의 마지막 행로

입력 | 2010-10-24 20:00:00


27세 청년이 북한의 황태자로 등극하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 황제’ 푸이를 연상했다는 사람이 많다. 푸이는 세 살에 청나라 12대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재위 4년 만에 쫓겨났다. 북한의 후계자 책봉식에 초청받은 서방 기자는 김정은을 마지막 황제에 빗대 ‘소년 황제(boy emperor)’라고 불렀다. 북한은 아버지 김정일이 정권을 물려받을 때만 해도 같은 사회주의 진영과 중국 소련이라는 든든한 후견세력이 버텨주고 있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다.

책봉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에서 탱크와 미사일이 위용을 과시하고, 트럭에 탄 여성 공수부대원들은 사열대에 서 있는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보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나 평양 시내에서는 “주민이 가위로 도로변 잡초를 자르고, 집에서 쓰던 빗자루와 걸레로 아스팔트 도로를 쓸고 닦고 있었다”고 영국 BBC방송의 마이클 브리스토 기자가 보도했다.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국가자원의 너무 많은 부분을 생산적인 것에서 빼내 군사적 목적에 쓰게 되면 국가의 쇠퇴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전쟁의 승리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에 돌아갔으며 군사적으로 가분수인 나라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케네디 교수는 논증하고 있다. 소련의 멸망도 그런 사례다. 북한도 경제력에 비해 엄청난 가분수인 선군(先軍)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가분수 先軍은 반드시 망한다

한 시대가 마감할 때 비운의 최고 권력자가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따라 자신의 안위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일본 에도막부(幕府)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1837∼1913)도 흥미로운 사례다. 그는 1866년 제15대 쇼군이 됐으나 당시 일본을 휩쓸던 막부 타도 흐름에 밀려 1867년 국가통치권을 왕에게 반환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막부의 막을 내렸다. 그는 메이지 신정부군이 에도로 쳐들어오자 신하인 가쓰 가이슈에게 사태 수습을 맡기고 절에 들어갔다.

막부의 붕괴는 봉건제도의 종언과 일왕 중심 중앙집권적 근대국가의 탄생을 의미했다.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근대화를 추진한 메이지유신(1868년)의 소프트랜딩에는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도 기여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가 정권에 연연해 반(反)막부세력과 무모한 전쟁을 벌였더라면 일본 전역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는 권력을 놓은 뒤 자책감으로 할복하지도 않았다. 사진 수렵 투망 바둑 같은 취미에 몰두하며 만년을 보내다 1913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떴다.

김정은이 요시노부보다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나 그의 둘째 아들 니쿠와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니쿠는 김정은처럼 일찍이 후계자로 지목됐다. 루마니아 인민이 불 꺼진 아파트에서 생활필수품 부족으로 고통을 겪을 때 니쿠는 여자 술 도박 자동차 보석에 탐닉했다. 1989년 민중혁명이 일어나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한 부모가 총살당한 뒤 그도 체포돼 20년형을 받았다. 그는 술병인 간경화로 1992년 석방됐으나 4년 만에 오스트리아 빈의 병원에서 간 수술을 받다 45세를 일기로 죽었다. 견제 없는 방종이 낳은 비참한 최후였다.

차우셰스쿠는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집권 후 전개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차우셰스쿠는 1989년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에게 동유럽권의 자유화 운동을 강경 진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대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시위 군중을 학살하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공산국가 지도자의 몰락에서 차우셰스쿠와 대비되는 것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모델이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추진했다. 그의 개혁은 소련 내부에 잠재해 있던 문제를 표출하는 계기가 됐다. 보수 관료들의 쿠데타 실패 후 소련공산당의 권위는 급속히 추락했다. 그는 1991년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지만 동유럽의 개혁과 냉전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김정은이 맞을 최후의 모델은?

공산국가들의 붕괴는 개혁개방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면 소련처럼 망하고, 안하면 루마니아처럼 망할 것이다. 중국과 같은 대국은 ‘경제는 개방, 정치는 공산당 일당지배’를 하면서도 버티고 있지만 남한에 비해 인구와 경제력이 현격히 뒤지는 북한으로서는 위험한 실험이다.

소년 황제는 자의에 의한 선택보다는 외부 환경 변화에 의해 갑자기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게 될 것이다. 비운의 황제가 마지막에 요시노부 같은 길을 가면 가련하게나마 한 몸은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