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문화 공간이 서울 도심에 속속 문을 열고 있다. 12일 노인을 위한 전시공간인 서울 종로구 경운동 ‘고운님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이 법정 스님의 유묵을 감상하고 있다(왼쪽). 경운동 실버 북카페 ‘삼가연정’(오른쪽 위)과 서대문구 미근동 ‘청춘극장’도 개장했다. 사진 제공 서울시
잔잔한 플루트 연주가 들리는 가운데 어찌 보면 아이가 쓴 듯하고, 어찌 보면 서예가의 달필 같기도 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올 3월 입적한 법정 스님이 1974년 서울 봉은사에 있을 때 현장 스님(전남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장·당시 행자)에게 써 보낸 연하장 글씨다. 현장 스님은 당시 전남 송광사 뒷산에 법정 스님이 머물 불일암 짓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12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동예헌 건물 2층 ‘고운님 갤러리’에서는 법정 스님의 유묵(遺墨) 30여 점을 한번에 볼 수 있는 ‘법정 스님 선묵전(禪墨展)’이 7일부터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에 흐르는 음악은 천주교에서 발행한 명상곡 모음으로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서 수행에 정진하던 시절 자주 듣던 곡이라고 한다.
○ “노인 위한 전시 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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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선묵전은 ‘고운님 갤러리’의 개관 특별 전시다. 이곳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을 여는 ‘실버갤러리’. 개관식은 13일 연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서울시 노인복지센터 측은 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배식 봉사를 하는 ‘맑고 향기롭게’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대원사에서 법정 스님의 유묵을 전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전시로 결정했다.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스님이 1994년 설립한 시민운동 단체다.
고운님 갤러리는 앞으로 노인을 위한 작품전, 예술 읽기 강좌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노인들이 복지센터에서 취미로 배운 서예 작품이나 그림도 전시하고, 한지 도자기 매듭 공예교육, 감상평 공모도 한다. 전시 및 교육은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 선묵전을 관람하던 서병순 씨(80)는 “글씨에서 깨끗이 살다 간 스님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며 “복지센터에서 8년째 취미로 서예를 배우고 있는데, 이런 번듯한 갤러리에 글씨를 걸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말했다.
○ 종로 실버 문화벨트 디딤돌
고운님 갤러리뿐 아니라 노인을 위한 전용 문화공간이 서울 도심에 속속 문을 열고 있다. 2일에는 서대문구 미근동에 ‘청춘극장’이 개관했다. 1963년 개관한 600석 규모의 옛 화양극장(서대문 아트홀)에 노인 안전시설, 편의시설을 보강해 실버 전용 문화공간으로 바꾼 것. 이곳에서는 내년 2월까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닥터 지바고’ 등 실버영화를 231회 상영한다. 추억의 가수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청춘카페’ ‘어르신 상담센터’ ‘추억의 뮤직박스’ 등으로 구성됐다. 입장료는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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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