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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DO IT/기자체험시리즈]복싱 3라운드 도전

입력 | 2010-10-09 03:00:00

스파링 1분만에 헉헉 30시간 같던 ‘지옥 3분’




강펀치 날렸지만…글러브를 끼고 주먹을 휘두르는 건 마치 옷을 껴입고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로모션 같은 주먹질도 초보로선 온 힘을 짜내야 한다. 본보 스포츠레저부 김성규 기자(오른쪽)가 기본기만 익히고 링에 올라 복싱 경력 7개월의 이혁렬 씨를 상대로 주먹을 뻗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우리네 삶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멀어진다. ‘그때 해봤으면 어땠을까?’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당장 뛰어들어 보자. 해봤다는 뿌듯함만큼은 남지 않을까.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본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들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스포츠에 도전한다. 일단 몸으로 부딪쳐 보는, 때론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도전 스토리가 될 것이다. 대부분 실패담이 될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생활체육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목에 나설 작정이다. 아직도 뭔가 하기에 앞서 망설이는 독자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잽은 복싱의 기본 중 기본. 눈썹 옆에 말아 쥔 주먹을 상대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뻗는다. 잽은 깃털처럼 가벼워야 한다. 그래서 결정타는 아니다. 하지만 거리를 재고 상대의 펀치를 견제하는 데 잽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잽이 조연이라면 스트레이트는 주연이다. 조연들이 쉴 새 없이 무대를 들락거리는 동안 주연은 무대 뒤편 소파에 조용히 앉아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다. 이윽고 나설 차례가 온다. 방아쇠를 당기면 오른 주먹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린다.’

권투 만화를 즐겨 읽은 기자가 생각하는 복싱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많이 달랐다. 기본은 잽이 아니라 체력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격투기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을까. 내 경우엔 ‘정의의 주먹’에 대한 로망이다. 2004년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 현수(권상우)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리는지 보여준다. 이에는 이, 결국 현수는 폭력으로 맞서기 위해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를 밤마다 익히며 힘을 키운다. 나는 영화 속 현수보다 10년 늦게 고교를 다녔지만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화가 끝났을 때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액션에 대한 로망이 잘 사라지진 않는다. 일상 어디든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 잠재해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하철역 승강장에 누군가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거나 식당 옆 테이블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사내들이 지나치게 시끄럽게 떠들어 식사를 망친다. 그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고교 때 절권도를 익히지 못한 나는 자꾸 작아진다. 집으로 돌아와 머릿속에서 상대를 응징한다. 요점은 결국 자신감이다. 지갑이 두둑하면 배고파도 의연할 수 있는 법. 복싱을 배워보자.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간 서울 서초구의 한 복싱 체육관. 플라이급(51kg) 프로 복서 출신인 전재철 관장(34)은 눈치가 9단이었다. 배 나온 중년의 예비 수강생 마음을 꿰뚫었다. “6개월만 배우면 어깨에 힘줄 수 있어요.”

복싱 체육관의 풍경은 아날로그적인 데가 있다. 한쪽 구석에 실제 크기의 3분의 1 정도로 축소해 만든 사각의 링이 있고 안쪽 벽 한 면은 전체를 거울로 처리했다. 청 테이프를 칭칭 감은 샌드백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탈의실에선 땀에 전 옷들을 방치해둬 고약한 냄새가 난다. 바로 이런 곳에서 ‘전사’가 태어나는 것이다.

당장 샌드백을 두들겨보고 싶지만 웬걸. 최소 일주일은 줄넘기에 잽과 ‘원투(잽에 이은 스트레이트)’를 익혀야 한다.

복싱은 기원전 900년경에 쓰였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등장하는 격투기의 할아버지다. 하지만 국내에선 지나치게 평가 절하됐다. 태권도, 합기도 배우러 다닌다는 친구는 가끔 봤어도 권투한다는 녀석은 못 봤다. 격투기보단 사각의 링에 제한된 스포츠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6개월은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지만 관장을 졸라 링에 서보기로 했다. 애들은 역시 맞으면서 크는 게 아닌가. 글러브를 끼기 전에 붕대를 주먹에 감는다. 그 과정이 결전을 앞둔 전사처럼 긴장된 느낌을 갖게 한다.

상대는 복싱을 시작한 지 7개월 된 이혁렬 씨(30). 키 177cm에 체중도 80kg을 훌쩍 넘길 듯한 위압적인 체격이라 보는 순간 기가 죽는다. 기자는 173cm에 77kg으로 과체중이다.

3라운드에 도전하겠다는 말에 관장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나름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17년간 피웠던 담배를 사흘 전에 끊었다. 심폐지구력이 10% 정도는 향상됐을 것이다. 땡∼. 마침내 공이 울린다.

복싱에서 글러브는 왜 끼는 것일까. 상대에게 너무 많은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주먹을 보호하고 한편으론 방패 역할을 한다. 하지만 초보에겐 글러브의 무게와 부피 때문에 깃털처럼 가벼운 잽, 총알 같은 스트레이트는 언감생심이다. 얼굴 근처까지 들고 있는 것도 벅차다.

3분이 30시간처럼 느껴졌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면서 체력의 한계에 도달하는 데 1분이면 족했다. 남은 2분을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힘이 빠져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드를 내리는 순간 상대의 주먹이 맨얼굴로 날아든다. 맞기 싫으면 기를 쓰고 팔을 올리고 있어야 한다. 극한의 상태에서 머릿속이 현기증이 난 것처럼 하얘진다. 순간 유체 이탈한 내가 슬로모션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뛰는 3분은 영원한 시간 같고 쉬는 1분은 1초도 안된 듯하다. 2라운드까지 마치곤 정말 쓰러질 것 같은데 금방 공이 울린다. 자존심으로 다시 중앙으로 나섰는데 설렁설렁하던 이 씨가 마지막 라운드라고 과격하게 돌변했다. 몇 대 맞으니 10초 정도 오기가 발동했지만 이후 체력 고갈과 함께 급속도로 전의가 사라졌다. 결국 상대에게 등을 보이며 “그만”이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관장은 “그 정도면 예상 밖의 선전”이라고 격려했다.

왜 최근의 복싱 체육관이 다이어트를 앞세우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살인적인 스파링에서 어떤 군살도 살아남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살이 빠지기 전에 사람이 먼저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초심자 가운데 열에 아홉은 3개월을 못 버티고 포기한다는 것. ‘액션 고수’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동영상=감성파이터 서두원, “방송이 격투기보다 좋은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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