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꿋꿋하게 뛰는 모습 보며 응원-박수치는 것밖엔 할게없어나이지리아전서 불같이 화 낸건 고민끝 나온 고도의 계산된 행동”
성남=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장면1.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8강이 열린 지난달 17일 트리니다드토바고 마라벨라의 맨니램존 스타디움. 전반전이 끝난 뒤 선수 대기실로 들어온 태극 소녀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언제나 ‘허허’ 웃으며 “잘했다”고 격려해 주던 감독님이 불같이 화를 내서다. 스트라이커 여민지(17·함안대산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수들의 눈빛이 이때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전반 나이지리아에 2-3으로 뒤지며 답답한 경기를 이어가던 한국은 후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6-5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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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호랑이’가 된 이유. 당사자에게 직접 물었더니 “고도의 전략”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덕주 감독(50)을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대회 기간 중 유일하게 선수들의 집중력이 아쉬운 시점이었다”면서 “어떻게 따끔하게 한마디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곁에 있던 물병을 걷어찬 행동까지 사실 모두 계산된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이 장면이 화제가 됐을 만큼 그의 온화한 리더십은 대회 기간 내내 주목받았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지도 스타일에 빗대 ‘아버지 리더십’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는 “아버지 리더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며 미소 지었다. “제가 딸만 셋인데 성격이 모두 달라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선수들을 잘 이해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보듬을 수 있었던 이유죠.” 그는 또 “내가 자상하게 보였다면 선수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며 “아파도 꿋꿋이 참고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해줄 수 있는 건 박수치고 응원하는 일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국내에서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랜 기간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 앞서 어떤 주문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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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감독은 대회 득점왕(8골)과 최우수선수상을 휩쓴 여민지를 두고 “한국 축구의 보배”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저는 부상으로 선수 시절 내내 고생했어요. 그래서 대회 직전 민지가 부상했을 때 데리고 갈 생각을 안했죠.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근데 민지가 정신력으로 그 짧은 기간에 부상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사가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결승전 승부차기 직전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물었다. 그는 “딱 한마디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다”며 “어떤 감독이라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최덕주 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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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경남 통영
▷학력: 부산 충렬초-동래중-동래고-중앙대
▷선수 경력: 한일은행(1984)-포항제철(1985)-프라이부르크(독일·1986)-마쓰시타전기(일본·1987∼1988)
▷지도자 경력: 모모야마대 코치, 오사카 조선고·선발팀 감독(이상 일본)-17세 이하 여자 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