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대미협상파’ 외교수장에 올라… 핵실험 무력시위 대신 대화 나설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강석주 등 대미 협상라인 3인방을 전원 승진시킨 것은 28일 노동당 대표자회 개막을 앞두고 미국을 향해 대화의 손을 흔든 것으로 풀이된다.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 위원장이 자신과 측근 엘리트들 사이에 형성된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정리했는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대미 협상파 입지 강화 시사
그는 1993년 1차 핵 위기 이후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아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후 실무협상은 후배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넘겨준 뒤 막후에서 대미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제1부상으로 승진한 김계관도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북측 차석대표로 참여했다. 2004년 이후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나서면서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 10·3합의를 이끌어 냈다. 북한 내 대미 전문가로 꼽히는 이용호 신임 외무성 부상은 차기 6자회담 수석대표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날 인사는 북한 지도부가 핵 문제를 3차 핵실험 등 실력행사가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며 “강석주는 대외담당 부총리로서 외교정책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더라도 대미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내비쳤다는 관측도 있다. 강 부총리가 선임인 박의춘 외무상(장관)을 제치고 승진한 것은 후계자 김정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북한 지도부 내 인사 갈등 어떻게 정리될까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노동당 상무위원이나 조직담당 비서 등 당내 최고위 요직을 차지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 사이에 나돌던 권력 갈등설은 가라앉는 대신 신속한 권력 승계 쪽으로 무게가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나타나지 않고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이 득세할 경우 장성택과 김정은 사이의 경쟁 구도가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이 장 부장을 단순한 김정은의 후견인이 아니라 자신의 노후와 사후를 책임질 과도적 최고권력자로 지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성택과 김정은의 경쟁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장 부장의 부인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김정일의 네 번째 처로 알려진 김옥의 경쟁구도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초반 무용수에서 일약 김정일 서기실 타자수로 등장한 김옥이 김정은의 생모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밖에 당과 군 출신 엘리트, 중앙당과 지방당 당료 사이의 갈등구조가 어떻게 정리될지 관심이다. 이번 당 대표자회는 당의 정상화를 통한 사회주의적 집단지도체제의 복원이 표면적인 목표이지만 일각에서는 오극렬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등 군부 실세들이 당 요직을 맡아 ‘당의 군부화’를 꾀하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