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도쿄(東京) 우에노(上野) 거리에 위치한 한 한국식당.
나카야마 타카테루(中山¤彰·25) 씨는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한쪽에서는 삼겹살이 익고 있었고, 4명의 일행들은 도토리묵과 모듬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한국의 저녁 회식 자리처럼 보였다. 나카야마 씨는 "한달에 한 두차 례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신다"며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친구의 권유로 처음 마셔본 뒤 입에 맞아 자주 마신다"고 했다. 한국에서 불고 있는 막걸리 바람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막걸리 한류'는 일본 시장을 보다 빠르게, 보다 넓게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20, 30대 여성에서 전 계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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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식당에서는 '거봉막걸리', '매실막걸리' 등 다양한 막걸리 칵테일이 판매되고 있었다. 식당 관계자는 "칵테일로 막걸리를 처음 접한 뒤 나중에는 정통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막걸리와 한식을 찾는 일본인 손님이 늘면서 이 식당은 아예 '막걸리+모듬전'(3500엔, 약 5만 원)과 같은 세트 메뉴도 내놓았다.
일본에서 막걸리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3년 여 전부터라는 것이 현지 막걸리 업체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종견 aT(농수산물 유통공사) 도쿄지사장은 "한국과 일본의 막걸리 붐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금처럼 양국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끈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다녀온 일본인들이 막걸리를 찾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막걸리가 인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한국에서도 막걸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 이 지사장은 "연간 300만 명이 넘는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고, 배용준과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한류 바람은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폈다"며 "소비층이 초기에는 20, 30대 여성층을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더 넓고 두터워졌다"고 분석했다. 일본도 같은 쌀 문화권이어서 쌀로 만든 술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막걸리 인기에 한몫했다.
●과당 경쟁 우려도
오사카(大阪)에서 15년 째 한국 식당 '한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명희 사장은 최근에 생막걸리 전용 보관 용기를 들여놨다. 10L 들이 통 2개가 달린 이 용기는 차가운 상태를 유지시켜주고, 막걸리 특유의 침전물이 고루 섞이도록 해준다. 이 사장은 "막걸리를 찾는 손님이 많아 용기 가득 막걸리를 채우면 딱 하루 판매량이 된다"며 "한국 손님은 막걸리를 잘 찾지 않고 일본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고 귀띔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이 식당의 손님 중 95%는 일본인이다. 이 곳에서 만난 후지와라 쇼오이치(藤原昌一, 44) 씨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막걸리 자체가 좋아서 마신다"며 "독주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에도 맞고, 목넘김도 부드럽고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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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줄잡아 40여 업체가 올해 초부터 막걸리 시장을 뛰어든 탓에 벌써 과열 경쟁의 기미도 보이고 있다. 노태학 aT 오사카지사장은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일본 내 막걸리 시장이 국내 업체들의 출혈 경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며 "업체들의 활발한 진출도 좋지만, 일단 현지 유통망을 확보 한 뒤 진출해야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오사카=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