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인기 약하지 않나… 대표를 인기로 뽑나정동영 대선주자 나서면… 7전8기 미덕 아니다
정 전 대표는 먼저 “여러 사람이 대표 연임을 하지 못한 것은 성공하지 못해서였다. 나만큼 성공한 대표는 없었다”고 자부했다. ‘성공한 대표’로 자평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2년 전 민주당의 모습은 환자나 마찬가지였다. 10%대 초반의 당 지지율, 각종 선거에서의 연패로 인한 선거 공포증…. 민주당의 당 지지율이 30%대가 되고 승패가 3 대 5인 7·28 재·보궐선거 결과도 패배로 받아들일 정도로 당의 기초체력을 바꿔놓은 게 정세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세균 1기’가 회복기였다면 ‘정세균 2기’는 변화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화법은 대표직 사퇴 이후 한 달여 사이에 변해 있었다. 호흡이 짧아졌고 직설적이 됐다.
그는 재임 시절 적잖은 ‘반(反)정세균’ 기류에 부닥치곤 했다. 친노(노무현)-386그룹 중심의 당 운영으로 ‘사당(私黨)’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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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2년 대선후보 경선의 전초전 격인 이번 전대 과정에서 “‘관리형 대표’가 되겠다”면서도 “대선주자도 되고 싶다”고 했다. ‘정치인 정세균’의 목표는 당권일까, 대권일까.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대선의 판을 키워야지 개인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사람이 대표가 돼선 안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일찌감치 ‘내 목표는 대권’이라고 밝힌 손학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냐고 묻자 주저 없이 “그렇다”고 했다.
이어 ‘2007년 대선주자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이 다시 대선주자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어떤 질문에도 변함없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권 도전 7전 8기가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에서도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패(2000년 대선)를 당하고도 재도전하지 않았다.”
좀 더 뾰족하게 ‘당 대선후보였던 정 고문을 쫓아낸 건 가혹했지 않나’라고 물어봤다. 지난해 4월 전북 전주 덕진 재선거 때 정 대표는 정 고문을 공천에서 배제했고, 정 고문은 탈당했다. 이 질문에 정 전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언제 쫓아냈나. 자기가 먼저 나갔지. 난 당시 ‘(2009년 10월) 경기 안산 재선거나, (6·2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출마하면 당 차원에서 예우하겠다’고 했다. 그때 일은 내게도 상처가 됐지만 지금 결단해야 한다 해도 똑같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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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전대엔 대의원 투표 외에도 ‘당원 여론조사 30%’가 반영된다. 조직(대의원)에선 앞서지만 대중적 인기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게 정 전 대표에 대한 대체적인 평이다. 전대 전망에 대해 그는 약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렇게 답했다. “대표는 인기투표로 뽑는 게 아니다. 또 내가 인기가 없지도 않다. 제주에서도 ‘사진 찍자’는 여고생들이 있더라.”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제주=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정세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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