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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배우 엄태웅 씨

입력 | 2010-09-03 03:00:00

배우들의 고생하는 뒷모습 일기 쓰는 심정으로 기록했죠
아마추어 사진가보다는 아직,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카메라를 잡고 포즈를 취한 엄태웅 씨.

《카메라는 한계를 지닌 기계다. 반드시 본인이 그곳에 있어야만 그곳 모습을 찍을 수 있다. 따라서 자기가 있는 곳이 남들이 근접하기 힘든 자기만의 장소라면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저절로 전문사진가의 뛰어난 기교보다 더한 가치와 희귀성을 확보하는 셈이다. 그 현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연예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카메라를 사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문득 자기 영역인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에서 사진을 찍는 데 눈 돌린 배우가 있다. 얼마 전 ‘선덕여왕’에서 김유신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고 지금은 그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시라노 연애조작단)와 한국판 ‘닥터 하우스’로 알려진 드라마(닥터 챔프)의 방영을 앞둔 배우 엄태웅이 주인공이다.》

처음 그는 자신의 촬영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자 심심풀이로 카메라를 꺼내 들곤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배우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무대 뒤의 모습은 어떤지 일반인은 잘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나 촬영장 분위기 등에 관한 기록이 적어 뒷날 추억을 되살리기엔 한 장의 사진도 본인에게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소극적 사진 찍기에서 벗어나 본인의 홈페이지 등 자신과 관련된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사진을 올렸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영화 촬영 현장이나 세트장 주변 모습, 같이 일한 동료들과의 추억 등을 배우로서 기록자로서 메모하듯이 하나둘씩 사진으로 기록한 것들이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엄태웅이 사진 한다는 사실은 다른 사진 하는 연예인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나는 사진을 한다고 할 수가 없죠.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조민기 선배 같은 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단지 사진에 호기심이 많았고 장난 삼아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을 뿐입니다. 아마추어 사진가 그런 식으로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정도로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카메라는 언제부터 만졌는지….

“2006년부터니까 얼마 되지 않았죠. 특별히 사진을 찍으러 야외로 나가지 않고 일상에서 느낌대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처음에는 올림푸스 EE3반자동 필름카메라를 쓰다가 디지털로 바꾸면서 올림푸스 PEN 시리즈로 바꿨어요. 사진 실력이 잘 늘지 않아 DSLR 카메라를 쓰기도 했는데 제 탓이겠지만 카메라 크다고 사진 잘 나오는 건 아니더군요. 촬영을 위해 이동하면서 휴대하기 편한 하이브리드형 카메라 PEN이 저에겐 적합한 것 같아요. 카메라가 작으니까 사진 찍히는 상대방도 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주로 무슨 사진을 찍나요.

“일하다 보면 배우들은 촬영대기 시간이 길어요. 그럴 때 주위에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피곤해하는 모습, 자고 있거나 모여서 서로 장난치며 얘기하는 모습, 분장하느라 바쁜 모습,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순간 등을 동료로서 다가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요.”

엄태웅 촬영.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알천(이승효·왼쪽)과 박의(장희웅)의 달콤한 낮잠.


―‘선덕여왕’ 때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싸이월드 미니 홈피, 엄태웅 공식 웹사이트, 공식 팬 카페, 디시인사이드의 엄태웅 갤러리에 제가 찍은 사진을 올렸어요. 사진이 순수하게 팬과의 소통의 도구가 되었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올리고 하다 보니 실력이 조금씩 늘면서 빠져들었고 지금은 제 ‘메모장’이 된 셈이죠. 카메라를 정말 분신처럼 느껴 늘 소지하고 다녔는데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사실 요즘은 약간 시들해졌어요. 촬영이 있는 날만 카메라장비를 챙겨 나가요. 촬영장 주변의 일상을 일기 쓴다는 기분으로 그냥 사진을 찍습니다. 잘 나온 사진은 직접 프린터로 뽑아 본인에게 주기도 하는데 다들 좋아합니다.”

―‘촬영장’을 자주 찍는 이유는….

“배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다 보니 대중은 배우들의 화려한 앞면만 쳐다보게 되죠.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고생하고 노력하는 무대 뒤 모습은 잘 모릅니다. 그런 처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배우 자신이고 그런 모습은 배우가 아니면 누가 찍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그곳은 배우가 아니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죠. 저도 배우니까 그곳에서 사진을 맘 놓고 찍어도 되는 특권이 생긴 셈이니 전문 사진가보다 낫죠. 배우들끼리 친분도 있고 서로 허물없이 지내다 보면 시간도 때울 겸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는 거죠. 친목 도모에도 좋고요 ”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스태프, 배우 이민정, 배우 이민정과 김현석 감독(왼쪽부터).


―사진을 찍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그런 것은 없고요.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애써요. 그래서 그런지 잠자는 사진을 많이 찍게 되더라고요.(웃음) 징크스는 있어요. 분명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으면 이상하게 사진이 잘 나와요. 정말 신기해요.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이 찍는다는 그 말은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배우니까 사진이 직업과 밀접해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때는 의식하지 못하는데 사진 화보촬영을 할 때는 렌즈의 성격에 맞게 원하는 포즈의 설정이나 감정 표현이 잘되는 편입니다.”

―사진과 관련된 다른 배우들의 재밌는 일화가 있다면….

“정말 웃기고 굴욕적인 사진들이 있는데 본인들이 삭제하길 원했으나 몇 컷은 아까워 삭제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공개할 순 없겠죠. 대체로 우연히 걸린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입니다.”

―이제 사람을 얼짱 각도로 찍을 수 있겠다.

“특별히 얼짱 각도를 의식하진 않지만 많이 찍다 보면 어느새 내가 모양새가 좋아 보이는 쪽에서 얼굴을 많이 찍고 있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사진 찍어본 배우 중 어느 배우가 가장 포토제닉 했나.

‘선덕여왕’의 류담(사진 위). ‘우생순’의 김지영(사진 아래).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개그맨 류담은 정통 배우도 여자도 아닌데도 표정이 정말 다양하게 나와요. 성품도 덩치만큼이나 넉넉하고 푸근한데 배우보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그런 사진들만 모아서 전시를 해도 되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친분으로 찍는 사진들이지만 배우들의 사진은 이를 영리에 이용하면 초상권 문제로 직결돼요. 일일이 본인의 허락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죠. 또 전시회를 하면 어떤 사진을 골라야 할지, 사람들이 보고서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 현재론 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아요.”

―사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취미로 할 뿐이지만 사진 실력이 늘지 않고 찍어 보면 그 사진이 그 사진이란 생각이 들곤 했어요. 궁금증이 생기면 촬영현장에 스틸 사진 찍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께 물어봤죠. 그런데 이것저것 많이 알수록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더 헷갈려 스트레스가 됐어요. 사진 실력이 한 번에 쉽게 느는 것도 아니겠지만 일과 취미,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소화 못 하는 제 스타일 역시 발목을 잡는 것 같아요. 이건 좋은 취미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건데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러니잖아요. 내가 찍은 사진이 예뻐 보이고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없어요.”

―인터넷에서 프로필 가족관계를 봤더니 엄정화 동생이라고만 적혀 있더라.


“인터넷에 누나 엄정화의 가족관계를 보면 반대로 엄태웅 누나로 적혀 있을 겁니다. 촬영차 시골에 갔더니 사람들이 엄정화 동생이라고 지칭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나는 누나가 더 유명해도 개의치 않아요. 누나가 유명해지는데 동생이 시기할 이유는 없죠. 그렇지만 누나도 요즈음 엄태웅 누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해요.(웃음) 누나와는 친해서 어머니께 말씀드리기 어려운 얘기도 스스럼없이 나누는 편이에요. 누나가 여자고 여리다 보니 오히려 동생처럼 여겨져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찌 됐건 누나와 연결고리를 갖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정화 씨도 뉴욕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사진전시회를 하면 카메라 회사에서 광고모델로 모시는 것 아닌가.

“누나가 최근에도 사진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화해서 물어볼까요?”(웃음)

―1974년생이다. 촬영장에서 밥 많이 먹는 걸로 소문났던데 힘 있을 때 장가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싶죠. 적당한 배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나이면 결혼을 해도 인기에 영향을 끼칠 나이는 아니고….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제멋대로 하는 모습이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하는 일이나 저의 감성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가 좋다는 뜻입니다.”

―돈 많은 여자하고 예쁜 여자가 있다. 마음씨는 둘 다 좋다. 누굴 택하겠는가?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가) “아직까지는 예쁜 여자가 좋아요.”

요즈음 무척 바쁜 터라 한 시간 동안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처럼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배우답게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면서도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 사진을 하다 보면 그것이 직업이든 취미든 사진에 대한 관심은 굴곡을 겪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솜씨가 느는 것이기에 사진 찍는 취미에도 약간의 스트레스는 필요하다고 조언도 했다.

그는 젊고 잘생긴 만큼 오래도록 배우를 할 것이다. 사진 찍는 능력을 떠나 그가 찍기 시작한 무대 뒷면의 인물이나 현장사진 촬영은 배우로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사진 작업이다. 오래 이어진다면 ‘촬영 현장의 역사’나 ‘자기 삶의 기록’으로서 먼 훗날 가치를 발하지 않을까 싶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