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박은태 씨 주연 뮤지컬 ‘피맛골 연가’
뮤지컬 ‘피맛골 연가’에서 김생(박은태·왼쪽)과 홍랑(조정은)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작품은 피맛골 살구나무를 중심으로 서얼 출신 서생 김생과 양반댁 규수 홍랑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언뜻 익숙한 구조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환유와 은유의 연쇄 고리로 이어진 환상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피맛골은 뒷골목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뒷골목인생=쥐구멍인생이란 점에서 서출(庶出) 김생=서선생(鼠先生) 쥐로 이어진다. 쥐는 자정을 전후한 자시(子時)를 대표하는 존재로 다시 이승(아침)과 저승(밤)을 넘나드는 신화적 존재로 변신한다. 몸통얼룩쥐와 꼬리얼룩쥐로 나뉘어 대립을 펼치는 쥐는 이념분쟁의 몸살을 앓아온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우화적 존재이기도 하다. 춤추고 노래하는 40마리 쥐들의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Cats)’와 비견해 ‘랫츠(Rats)’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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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을 무대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 환상, 풍자를 녹여낸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남녀 주인공 박은태 씨와 조정은 씨. 홍진환 기자
“2006년 ‘라이언 킹’ 앙상블로 뮤지컬에 입문한 뒤 성량이 작다는 이유로 주역 오디션에서 계속 미끄러졌어요. 2008년 ‘노트르담 드 파리’ 오디션에서 그랭그루아 역으로 발탁되면서 새 인생이 시작됐죠.”
뮤지컬 배우로서 성량이 작다는 것은 배역의 한계로 작용한다. 출신 때문에 출사(出仕)길이 막힌 김생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 오디션에선 마이크를 착용한 상태로 가창력을 평가받은 점이 ‘쥐구멍에 볕들 날’로 작용했다.
조 씨는 데뷔 초부터 ‘베르테르의 슬픔’과 ‘미녀와 야수’ 등의 로맨틱 뮤지컬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도맡아온 ‘공주과(科)’ 여배우였다. 하지만 2007년 ‘스핏 파이어 그릴’을 끝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올 초 이율배반적 사랑을 그린 ‘로맨스, 로맨스’에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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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눈팔지 않고 뮤지컬 배우로 남고 싶다는 두 사람은 대중성과 심층성을 겸비한 대본 못지않게 ‘싱글즈’와 ‘형제는 용감했다’의 장소영 씨가 작곡한 음악을 이 작품의 최대 매력으로 뽑았다. 김생이 불우한 처지를 한탄한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와 사랑의 이중창 ‘아침은 오지 않으리’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지녔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면서 티켓 가격을 소극장 뮤지컬 수준인 2만∼5만 원으로 설정한 점도 매력적 관객 유인 요인이다. 9월 4∼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99-1114∼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