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트/제프리 밀러 지음·김명주 옮김/655쪽·2만5000원/동녘사이언스
원시인에게 유명 브랜드 상품들이 가치가 있을까? 답은 ‘아니다’다. 저자는 왜 인간이 더 많이 소비하도록 진화해 왔는지를 밝히고 소비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제시한다. 사진 제공 동녘사이언스 그래픽 박초희 기자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밀러는 소비자본주의가 전제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수컷 사자가 텁수룩한 갈기를 뽐내고, 수컷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배우고, 수컷 정자새가 정자를 짓는 것은 모두 훌륭한 유전자, 훌륭한 건강, 훌륭한 사회 지능 같은 생물학적 형질을 광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 남녀가 사치품을 구매하는 것과 동일한 생물학적 행동이라고 밀러는 말한다.
즉 진화의 두 가지 기제 가운데 성(性) 선택의 압력이 인간의 과시 행동을 낳았다는 것이다. 밀러는 인간의 미술, 음악, 언어, 창의성도 모두 이러한 적응도를 높이기 위한 문화적 차원의 진화 기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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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소비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라는 ‘자연화’ 입장도 부정하지만 이것이 철저하게 고안된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보는 급진주의도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 선택으로 형성된 과시 행동에 더하여 이데올로기와 문화,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21세기 소비자본주의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마케터가 배워야 할 것은 자유시장 이론가인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이 아니라 바로 찰스 다윈, 즉 20세기 말에 태동한 진화심리학과 개인차에 관한 연구다.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을 이용한 마케팅 이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밀러에 따르면 마케팅은 이제 인간 문화의 지배적인 힘이다. 이때의 ‘마케팅’은 단순한 광고 전략이 아니다. 마케팅이란 인간의 욕구를 채우려는 체계적 시도이며 인간 본성의 미개척지가 기술의 야생적인 힘과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은 지구의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지구 생명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이기도 하다. 밀러는 더 나아가 마케팅에는 오만, 권력, 이상주의에 반기를 들 민주주의 같은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마케팅을 지향하는 나라라면 국민이 정부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 시장조사를 해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진화심리학을 통해 과시적 소비문화를 긍정할 듯이 보이는 그의 논리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부와 지위를 과시하려는 것은 병적인 소비자 나르시시즘에 지나지 않는 과시적 소비라는 설명이다. 밀러는 오히려 ‘몸의 자기 브랜딩’과 ‘마음의 자기 마케팅’을 권한다. 그리고 적응도 신호를 높이는 방식으로 몸보다 마음의 마케팅을 중시한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를 고를 때는 개방적인 사람을,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는 성실성을 꼽기 때문이다. 부와 지위만으로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현실에서는 계속해서 이제껏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의 과시적 소비가 만연할 것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지위와 존경, 명성, 성적 매력과 인기를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릇된 전제에 따라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된 것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세를 소비세로 전환하면 사람들은 자기 형질을 과시하는 ‘다른’ 방법을 좀 더 쉽게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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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