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호 황태자 만나보니…
윤빛가람이 1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윤빛가람은 하루가 지났지만 자신의 대표팀 데뷔골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수원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지성형 “잘해라”한마디 큰힘…백지훈형은 오랜 우상
3년 슬럼프 겪으며 ‘평범한 선수 되기 싫다’ 오기 생겨
고교시절 행운의 등번호 14번 대표팀서도 꼭 달고싶다■ 빛가람 그 이름이 궁금해
“어렸을 적에는 이름이 특이해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창피해서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축구선수가 되고 보니 사람들이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좋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윤빛가람(20·경남FC)은 11일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뒤 “골 넣은 게 실감이 나느냐”고 묻자 “침대에 좀 누워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하루가 지났다. 12일 다시 만난 그는 “막상 침대에 누워보니 어땠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라며 수줍게 웃음 지었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지는 데 새벽 2시까지 정신이 말똥말똥 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3시에 다시 깨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실력의 60%% 밖에 발휘 못해
득점 순간 머릿속은 백짓장이 됐다. 경황이 없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너무 얼떨떨해서 K리그에서 골 넣었을 때랑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조광래 호의 황태자’로 떠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아직은 낯간지럽다. 고작 1경기를 치렀을 뿐이고 무엇보다 득점은 했지만 자신의 경기 내용 자체에 만족하지 못해서다.
“실력의 60%% 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요.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하지 않아도 될 잔 실수가 많았어요. (조광래) 감독님이 경기 끝나고 특별한 이야기는 없으셨는데 아마 성에 안 차셨을 것 같아요.”
윤빛가람이 자신의 사진이 1면에 난 8월12일자 스포츠동아를 들어 보이며 쑥스럽게 웃고 있다.
○재도약을 위한 3년
윤빛가람은 부경고등학교 시절 ‘부동의 에이스’였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청소년월드컵 때도 가장 주목 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시작됐다. 고교졸업 후 중앙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컨디션 난조와 잦은 부상으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다.
그렇게 부진에 빠져 있던 시간이 3년. 윤빛가람 없이도 한국축구는 승승장구했다. 그와 함께 U-17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민우(20·사간 도스)는 작년 이집트 U-20 청소년월드컵 8강에 오르며 스타가 됐다. 또래 김보경(21·오이타)과 이승렬(FC서울·21)은 6월 남아공월드컵까지 참가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더 올라서기 위한 3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특히 (김)민우 형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나는 지금 그냥 평범한 선수가 돼 버렸다는 생각에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오기도 생겼어요.”
윤빛가람은 올해 경남에 입단하며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2년으로 잡았다. 조광래 감독도 면담에서 “2년 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조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면서 그도 전격 발탁됐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데 그 때야 내가 정말 대표선수가 됐다는 걸 느꼈죠. 하지만 프로에서 감독님의 제자였기에 주위의 시선 때문에 부담감도 많았어요. 아마 감독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신기했던 박지성, 우상이었던 백지훈
대표팀 소집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뛰어난 선배들과 함께 한 훈련을 잊지 못한다.
특히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는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TV로만 보던 분인데 이렇게 같이 훈련할 줄은 몰랐죠. 상상해 본적도 없죠. 경기 당일 날 (박)지성 형이 웃으면서 ‘잘 해라’라고 해 줬는데 짧은 한 마디였지만 큰 힘이 됐어요.”
오랜 우상도 만났다. 축구 센스와 기술이 뛰어난 백지훈(25·수원)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선수. 그러나 롤 모델이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쑥스러워서요. 제가 낯을 좀 가려요. 다음에 뵈면 꼭 제대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대표팀 14번의 꿈
목표를 묻자 그는 “소속 팀이든 대표팀이든 기회가 온다면 계속해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동원(19·전남)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K리그 신인왕도 욕심이 난다.
그러나 마음 속 깊숙하게 묻어둔 오랜 꿈은 바로 ‘대표팀 14번’이다.
“고등학교 때 14번 달고 게임을 잘 했거든요. 대표팀 되면 꼭 14번을 달고 싶었어요. 제 작은 꿈입니다.”
그는 이번에 대표팀에서 24번을 배정받았다. 언젠가는 대표팀에서도 당당하게 원하는 등번호를 택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김포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