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 속에… KB금융 어윤대호 13일 출범5년9개월 ‘장기집권’하며지주회사 전환작업 주도강정원 행장 쓸쓸한 퇴장
13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KB금융그룹 회장에 취임하는 어윤대 회장 내정자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어 회장이 이끌 ‘KB금융호(號)’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과 정치권의 금융권 인사 개입 의혹 등 각종 악재가 KB금융을 휘몰아치면서 회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이를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관심은 어 회장의 취임이 국내 은행산업 재편에 미칠 영향보다 그가 KB금융이라는 거함의 함장으로서 제대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더 쏠리고 있다. ‘최고경영자(CEO)형 대학총장’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가 대내외 악재로 위기에 처한 KB금융을 구해낼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KB금융은 2008년 지주회사로 출범한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당사자가 핵심 자회사인 국민은행의 하청업체 대표인 데다 지난해 말 KB금융 회장에 이어 조만간 실시할 국민은행장 인사(人事)까지 정권 실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임직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새 회장의 취임으로 10개월간 이어지던 CEO 공백사태가 끝나고 새 출발을 한다는 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 회장 취임 하루 전인 12일만 해도 민주당의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위’ 위원들이 국민은행 여의도본점을 찾아와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강정원 국민은행장 및 2명의 부행장과의 면담을 요구해 임직원들이 진땀을 빼야 했다.
외풍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 회장이 치유해야 할 KB금융의 속병은 훨씬 깊다. 자산 기준으로는 간신히 우리금융그룹에 앞서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당기순이익 기준으로는 신한금융그룹에 밀려 ‘리딩뱅크’의 지위가 흔들리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덩치만 컸지 생산성이 떨어지는 조직이라는 걸 어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최근 내부 임직원들에게 이와 관련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의 반발도 거세다. 국민은행 노조는 “어 회장이 우리금융그룹 등과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경우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어 회장은 “당분간 M&A를 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지만 노조 측은 어 회장을 ‘낙하산 회장’이라고 지칭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물러나는 강정원 행장
KB금융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던 한 금융권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강 행장이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며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최대 외곽조직이던 선진국민연대 측 인사들을 영입함으로써 ‘인맥 갈증’을 해소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 행장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무관하게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는 2004년 10월 국민은행장에 취임한 뒤 2005년 금융권 최초로 2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고 3년 연속 ‘2조 원 클럽’에 국민은행의 이름을 올렸다. 또 재임기간 중 각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여러 차례 1위를 차지했고 2008년에는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주도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