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학중앙연구원서 인문학 강조한 광고인 박웅현 씨아이디어 짜낼 땐 몰랐지만평소 접하던 책-그림서 영감인문학은 그 자체가 즐거움학자들 바깥과 많이 소통해야
“비발디는 저한테 씹다 버린 껌이었어요.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사방에서 벨소리로 나오는 익숙하고 지겨운 음악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비발디의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이 체험을 통해 그는 한 피로해소제 광고에 비발디의 ‘사계’를 배경음악으로 삽입하고 ‘××× 씨의 피로회복제는 상상력입니다’라는 카피를 내놨다. 2004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꿈’을 통해 얻은 영감은 2008년 이동통신 광고의 밑바탕이 됐다. 김화영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에서 읽은 폴 세잔의 말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한 정유회사 광고의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카피로 바뀌었다.
박 임원은 “우리 회사에서 열린 미루 프로그램에서 한형조 교수님이 퇴계가 ‘일상(日常)이 곧 성사(聖事)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를 봐도 그렇다. 그냥 말 타고 가는 평범한 일상인데 그걸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잘 감동받는 분들이었다. 바로 그게 창의성”이라고 말했다.
박웅현 TBWA코리아 전문임원이 2004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꿈’(위)은 4년 뒤 한 통신사 광고로 이어졌다. 박 임원은 “처음 봤을 때는 광고에 쓰겠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뒷날 떠올랐다. 이런 인문학에 대한 일상적 경험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TBWA코리아에서 고미술사를 강의했고 이날 박 임원의 강연에도 청중으로 참석한 윤진영 한중연 국학자료연구실 연구원은 “TBWA코리아에 가서 강의를 할 때 직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옛 그림을 한 장 보여줄 때마다 ‘우와’ 소리가 나며 반응이 좋았다”며 “원래 TV를 거의 안 보는데 그날 이후 광고만 따로 챙겨본다.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우리는 연구를 하며 그런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임원은 인문학자와 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현대사회는 결핍이 결핍돼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제대로 느낄 수 없죠. 하지만 인문학을 접하고 나면 달라집니다. 인문학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사람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여기 인문학 하시는 분들이 바깥과 소통을 많이 하시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