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1414년 최해산(崔海山)에게 중국의 경번갑(鏡幡甲)이라는 갑옷을 만들어 각 지역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최해산이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태종은 병조에 명해 기존 갑옷의 견본을 이용해 좀 더 견고하고 치밀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는 “철을 이용해 꿰면 썩지도 않고 단단할 것이어서 수리비용도 없앨 수 있다”는 제안도 직접 했다. 왕이 무기와 금속 기술에 대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1430년에 세종은 병조에 일러 각 포구에 있는 병선의 이음부위를 개선하게 했다. 당시 병선은 송판(松板)으로 만들고 나무못을 사용했다. 이어 붙인 곳이 어그러지고 쉽게 풀어져 틈새로 물이 샜다. 이 때문에 빨리 썩어서 7, 8년을 견디지 못했다. 중국 배는 달랐다. 소나무로 만들었으나 20∼30년을 거뜬히 견뎠다. 나무못 대신 쇠못을 썼다. 세종은 이를 참고해 개선작업을 하도록 했다. 상판 위에 유약의 일종인 ‘회’를 바르고 다시 느티나무를 겹겹으로 쌌다. 느티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면 노나무[(노,로)] 전나무[檜] 느릅나무[楡] 가래나무[楸] 등을 바닷물에 담가 시험한 뒤 사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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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건설문화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