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의 무덤’ 대구 부동산시장 가보니
지난달 22일 오후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 울타리 곳곳에는 '할인분양 계약세대 입주 절대 불가', '할인분양 하려거든 입주세대 보상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건설사가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해 최근 15~20% 가량 할인된 값에 아파트를 분양하자 제 값 내고 입주한 주민들이 할인금액만큼 환불을 요구하며 플래카드를 건 것이다.
오후 9시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대구의 타워팰리스'로 불리는 이 아파트는 1400여 채, 50층 규모로 대구 중심에 들어서 옥상 네온사인과 함께 대구의 밤을 화려하게 밝혀줄 스카이라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부분 세대의 불이 꺼져 있었고 드나드는 승용차도 보기 힘들었다. 대구시가 밝힌 이 아파트의 입주율은 30% 수준. 현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대구에서는 빈집에 불 켜기 운동까지 벌여야 할 정도"라며 "대구지역 신규분양 아파트의 실제 입주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인구 줄어드는 데 중대형 아파트만 쏟아져
대구지역 분양 대행사인 장백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대구에서 분양 중인 단지 중 33%가 할인분양, 32%는 전세분양이며 기존 분양가대로 분양 중인 주택은 35%에 지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자체 집계한 3월 말 대구 미분양 주택 수는 1만6594채. 2008년 말부터 본격화한 할인분양 등에 힘입어 미분양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월 말(2만2161채)에 비해 5567채 감소했으나 지난해 12월(1만6699채) 이후 4개월째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이처럼 대구가 '건설사들의 무덤'이 된 이유는 건설사들이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마진이 높은 중대형 아파트 건설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현지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5~2006년에는 지어놓기만 하면 100% 분양되는 분위기였다"며 "이때 시행사들이 앞 다퉈 중대형 아파트를 쏟아낸 게 지금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대구시 김종도 건축주택과장도 "현재 안 팔리고 있는 주택은 대부분 85㎡초과 중대형이고 85㎡이하 중소형은 잔여물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시 집계에 따르면 3월말 현재 60㎡이하 미분양 주택은 96채, 60㎡초과 85㎡이하는 5135채인 데 비해 85㎡이상은 1만753채였다.
미분양에 물린 건설사 자금 3조 원
문제는 대구의 경기침체와 미분양 사태의 해결 조짐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대구시와 현지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김 과장은 "현재 대구의 미분양은 중대형이 대부분이어서 실수요자를 위한 중소형 중심의 정부 대책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대구지역 건설사들이 2008년 말 앞 다퉈 도입한 전세분양의 계약만료 기간이 올해 말 도래해 입주자들이 전세금 환급을 요구할 경우 또 한 차례 분양 대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영업소장은 "현재 전세분양 보증금을 돌려줄 자금 여력이 있는 건설사는 거의 없다"며 "건설사들은 전세금을 추가로 깎아주거나 보다 큰 할인율을 제시하며 분양을 유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최소 3조원 이상의 돈이 미분양에 물려 있어 대구 경제는 돈줄이 말랐지만 미분양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사실상 없다"며 "'투기 조장'에 가까운 정책을 펼쳐 달라고 정부에 읍소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