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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칼럼]대통령의 눈물은 속으로 흘러야 한다

입력 | 2010-04-27 03:00:00


얼마 전 천재 피아니스트 지용이 명동에서 슈만의 ‘헌정’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가 거리에 나와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필자는 절제된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클래식 음악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싶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연주는 선진국 국민과는 달리 거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 자기 연민에 빠질 정도로 감정 노출이 심한 우리 국민에게 훌륭한 ‘감정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 국민은 눈물이 많음을 자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상가(喪家)에 가면 곡(哭)을 하는 것을 기본적인 예(禮)로 삼았다. 지나친 감정의 표현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기의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엄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장수가 아무리 비참한 현실에 놓이더라도 눈물을 보이며 오열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지나간 낡은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서양의 선진국 문화를 많이 접한 일본 작가 하세가와 뇨제칸(長谷川如是閑)이 “여자의 눈물은 승리의 눈물이며 남자의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다”라고 썼던 것도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우리 국민은 슬픈 감정을 지나치게 노출시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연민에 빠진 상태에서 타인과의 원시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눈물의 잔치를 벌이는 광경을 쉽게 보여준다.

이성 흐리게하는 정치인의 감성

눈물은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흐르는 생리적 액체이지만 인간의 슬픈 감정을 외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내는 침묵의 언어다. 지난 노무현 정권 때부터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만들기에 앞서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눈물의 정치’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문성근 씨의 연설을 들으며 흘렸던 눈물의 힘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표를 얻어 권좌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인지 어려운 고비마다 국민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적지 않게 눈물을 흘렸다.

한명숙 전 총리 역시 안타깝게도 ‘눈물의 정치’를 마다하지 않아 ‘감성 정치의 달인’이란 칭호를 받는다. 그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 뇌물 수수사건에 연루되어 법정에 출두할 때나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총리 공간에서 현장검증을 할 당시에도 느긋한 웃음을 보였던 그가 1심 재판 후 봉하 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을 부둥켜안고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이 작고한 대통령의 음덕 때문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이 구사했던 눈물의 정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한 전 총리의 눈물은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대한 항의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국민의 지지와 저항을 이끌어 내기 위한 포퓰리즘의 성격을 지닌다. 그의 눈물이 포퓰리즘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다면 검찰을 ‘사악하고 치졸한 권력’이라고 비난하며 한때 국정을 책임지고 일했던 공직자로서, 비리를 저지른 곽 전 사장과 같은 사람과 연루되어 검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던 자신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한 참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성격이 다르지만 대통령이 국민 앞에 눈물을 보였어야만 했던 일 역시 유감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 수병을 추모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북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비통한 눈물을 보였다. 그의 눈물은 이념적인 눈물도 아니고 정치적인 눈물도 아니었다. 차가운 바다에 부하 수병을 수장(水葬)하게 된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의 참담한 심정을 나타내는 뜨거운 인간애의 눈물이었다.

이성 흐리게하는 정치인의 감성

이 대통령이 침몰한 천안함의 함장과는 달리 국민 앞에 눈물보다 더 무서운 위엄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결연하고 의연한 자세를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눈물은 아무리 순수해도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므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위험까지 내포한다. 1974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도 연설을 끝까지 마치고 눈물 없이 연단을 내려왔던 일이 한국 현대정치사에 전설로 남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전사한 수병과 유가족을 위로하며 눈물을 보였던 것은 폭력적인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비롯됐지만 비극적인 순간에 냉철한 결연함보다 거친 감정으로 오열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국민의 ‘감정교육’을 위해서도 그것을 억제하는 더욱 강인한 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했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