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돌고 돈다.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에 벌어진 일들 중에는 요즘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실록을 보면 오히려 조선시대가 더 민주적이며 경제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종 시대에도 요즘과 같은 신도시 개발이 있었다. 1417년 태종이 함길도(함경도)에 고을을 만들면서 각종 혜택과 세금 감면을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도 1438년 ‘신도시 개발’ 회의를 주재했다. 결론은 ‘함길도 부거(富居) 네 고을이 요지이므로 돌성을 새로 쌓아 군읍을 설치하고, 다른 고을 백성을 적당하게 옮기게 하며, 수령을 새로 골라 보내라’는 것이다.
세종 시대에는 토목과 도로 건설도 매우 과학적이고 인간적이었다. 1439년 세종 시절 “성을 둘러 길을 내는 것은 오래된 일인데 도성 옆에 사는 자들이 길을 막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초목이 무성하고 우로(雨露)에 젖어서 성곽이 무너지게 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한성부는 바로 성 안팎에 길을 내고 관리들이 날마다 순찰하게 해 문제가 있으면 봄가을마다 수리하게 했다. 예나 이제나 도로는 건설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시내 도로와 시외 도로의 폭을 달리해 교통의 효율성을 높였다. 도성 안에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에 두 자(약 60cm)를 더하고, 성 밖에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에 넉 자(약 120cm)를 더하게 한 것이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