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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사진, 또렷한 내면 천경우 씨 ‘여왕 되기’전

입력 | 2010-04-20 03:00:00


사진가 천경우 씨가 덴마크에서 진행한 ‘여왕 되기’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연작 중 하나.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장에 걸린 초상사진이 하나같이 흐릿하다. 초점이 맞지 않아 화려한 목걸이와 왕관, 푸른색 드레스 차림의 인물만 어렴풋이 드러날 뿐이다.

6월 5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천경우 씨(41)의 ‘Being a Queen(여왕 되기)’전의 풍경이다. 독일에 살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장시간 노출을 통해 윤곽이 흐릿한 사진을 제작해 인간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정부의 초청을 받은 작가가 현지에서 스스로 여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모집해 같은 옷을 입혀 촬영한 ‘여왕 되기 프로젝트’의 결실. 그런데 제작 방식이 독특하다. 인물의 나이를 분(分)으로 환산해 노출시간을 정한 뒤 그 시간 동안 모델이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예컨대 서른 살 모델의 경우 30분간 카메라 앞에서의 행동이 고스란히 녹아든 사진이 완성된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여왕과 비슷하다” “그녀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예술적인데 나도 그렇다” “여왕도 나처럼 키가 크다” 등등. 외모와 인생철학, 기질 등을 이유로 여왕인 척하던 사람들. 하지만 자신이 왜 여왕과 닮았다고 믿는지 그 이유를 카메라 앞에서 되새겨보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한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여왕의 초상이 아닌, 각기 다른 개인의 초상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한순간 찍고 끝나는 초상사진으로는 피사체의 진정성에 다가서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모델과 교감하는 소통의 과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가. 전시를 본 관람객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제안한다. 거울을 앞에 놓고 앉아 5분 동안 자신을 관찰한 뒤 이를 기록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색다른 체험이다. 3000∼4000원. 02-418-131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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